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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이름이 건방진 꽃

by 훈 작가 2024. 7. 2.

“건방지다니, 이게 무슨 말이야?”
 
사실, 꽃이 건방질 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유는 있습니다. ‘능소화’라는 이름 때문입니다. 능(凌)은 ‘능가하다, 깔보다,’의 능이고, 소(霄)는 ‘하늘’을 뜻합니다. 그대로 뜻을 적용해 보면 하늘을 능가하다, 깔보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하늘을 능가하고, 깔보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합니다.
 
트럼펫이 연상되는 꽃입니다. 깔때기 모양 같기도 하고, 나팔꽃과 흡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색이 좀 다릅니다. 주황색인데, 노란색이 많이 섞인 듯 보입니다. 화려한 느낌이 듭니다. 특히 꽃이 질 때, 다른 꽃처럼 꽃잎이 하나하나 떨어져 지는 것과 달리 통째로 떨어집니다. 처연하게 떨어지는 동백꽃과 닮았습니다.
 
시골에서는 처녀 꽃이라고도 부르는 꽃입니다. 한두 개씩 피지 않고 한꺼번에 피는 것도 특징입니다. 고즈넉한 시골 돌담에 피면 분위기가 잘 어울리는 꽃입니다. 그보다 덜 한 분위기이지만 삭막한 도시의 시멘트 담이나 붉은 벽돌담에 펴도 볼만합니다. 담쟁이덩굴처럼 줄기가 뻗어 무엇이든 붙잡고 올라가 피는 꽃입니다.
 
원래 능소화는 7월 초여름부터 9월까지 피는 꽃으로, 만개 시기는 8월입니다. 장마를 거치고 태풍이 몰아치는 한 여름 무더위 속에서도 당차게 피는 꽃입니다. 이 시기 사람들은 물난리를 치릅니다. 게다가 푹푹 찌는 찜통더위까지 괴롭힙니다. 이런 극한 무더위 속에서도 하늘을 깔보듯 피는 꽃이 능소화입니다.
 
이쯤 되면 왜 건방진 꽃인지 눈치를 채셨을 겁니다. 비바람이 몰아쳐는 궂은 날씨에도, 찌는 듯한 불볕더위에도 하늘을 업신여기는 듯한 꽃은 능소화밖에 없습니다. 꽃 이름이 건방지다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마치 하늘이 무너져도 나는 꽃을 피우고 말 거야 하는 불굴의 의지가 엿보이는 꽃입니다. 어찌 보면 보기보다 성질이 독한 꽃입니다.
 
꽃 이름만 보면 건방진 느낌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건방지다고만 할 수 없는 꽃입니다. 온갖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꽃을 피우는 것을 보면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흔히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처럼 장마와 무더위를 즐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게 아니라면 맞짱을 뜨듯 한번 ‘나랑 해 볼래.’ 하며 하늘을 향해 도전장을 던지듯 시건방진 행동일 지도 모릅니다. 하늘에게 ‘한 번 붙어보자.’하며 비웃듯 피는 꽃이어서 능소화라 이름을 붙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이런 상상이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지만, 능소화란 이름만 놓고 보면 자꾸 건방지단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의미는 찾을 수 있습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 더위에 당당하게 하늘과 맞서 꽃을 피우듯, 우리도 이 계절과 또 맞서야 합니다. 대신 능소화와 달리 하늘에게 늘 겸손한 자세는 유지해야 할 겁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해가 갈수록 심해지는 찜통더위나 여름철 태풍이 하늘 탓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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