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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나비 바늘 꽃과 인디언

by 훈 작가 2024. 7. 9.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 이후 아메리카 대륙은 300년 넘게 유럽 열강들이 이 대륙에서 식민지 쟁탈을 위해 전쟁을 벌였다. 한마디로 18세기 아메리카 신대륙은 영국·프랑스·스페인 등 유럽 제국주의의 각축장이었다.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벌어진 유럽 열강들이 벌인 전쟁 중 대표적인 것이 영국과 프랑스가 맞붙은 ‘프렌치-인디언 전쟁(French and Indian War, 1755∼1763)’이다.
 
이 전쟁은 북아메리카 오하이오 강 주변의 인디언 영토를 둘러싸고 일어난 식민지 쟁탈 전이었다. 그 당시 세계대전으로 불리던 유럽의 7년 전쟁(1756∼1763)보다 1년 먼저 일어났다. 영국과 프랑스 양국은 인디언들과 서로 동맹을 맺었다. 하지만, 인디언들에게 유화정책을 펼친 프랑스가 맺은 동맹이 더 많았다. 당시 인디언들은 허드슨만에서 미시시피강 지역까지 무시하지 못할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영국은 전쟁에서 승리해 북아메리카 동쪽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영화 ‘Last Mohican’은 18세기 미 대륙에서 벌어지는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전쟁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다. 영화는 인디언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아무런 관계없이 유럽제국의 질서에 따라야 했던 인디언 Mohican 족의 삶과 죽음, 사랑을 그렸다. Mohican 족은 지금의 미국 뉴욕주 캣츠 킬 산맥 북쪽 허드슨강 상류 유역에 살았던 인디언들이다.

북아메리카 대륙은 원래 인디언들의 땅이었다. 적어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는 신대륙을 침탈하기 시작했다. 서로 좋은 땅을 더 차지하려고 전쟁을 벌였다. 인디언들은 삶의 터전을 지키는데 역부족이었다. 모히칸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모히칸족 땅에 들어와 약탈, 방화, 무자비한 살육을 벌였다.
 
모히칸족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모히칸 추장은 그의 아들을 포함한 전 부족 성인 남자들을 결집시켜 전사가 되어 싸우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그의 아들에게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나비와 함께 춤을’이란 이름을 가진 여인이다. 추장 아들은 어쩌면 이 싸움이 마지막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싸움에서 패배하면 더 이상 못 볼 같은 예감이 들어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갔다.
 
추장 아들과 그녀는 마지막이 될 것 같은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전투를 위해 계곡 아래로 떠났다. 모히칸족 전사들은 활과 칼을 들고 용감하게 싸웠다. 하지만 총을 가진 백인들에게 당할 수가 없었다. 결국 인디언 전사들은 모두 죽고 말았다. 전투가 끝난 후 모히칸족 여인들은 숨진 전사들의 심장을 꺼내 신성한 땅에 묻고 정들었던 삶의 터전을 떠나기 전 죽은 전사들의 영혼을 위해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추장 아들의 연인 ‘나비와 함께 춤을’도 사랑하는 연인의 심장을 꺼내 묻고 같이 춤을 추었다. 그 모습은 마치 나비들이 함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그 이후, 모히칸족의 여인들은 어디로 간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전사들이 묻힌 신성한 땅에 매년 여름이 되면 나비를 닮은 꽃들이 피어났다. 이 꽃이 나비 바늘꽃(일명 : 가우라)이다. 꽃말은 ‘섹시한 여인, 떠나간 이를 그리워함’이다. 이것이 나비 바늘 꽃에 얽힌 이야기다. 
 
역사는 아이러니하다. 미국은 인권을 최우선의 가치로 내세우는 나라다. 하지만, 그들은 그럴만한 자격이 없다. 인디언의 땅인 아메리카 대륙을 어떻게 침탈해서 빼앗았는지 역사는 다 안다. 인권 운운하는 건 ‘도둑이 제 발 저리다’는 말처럼 자신들이 과거에 저지른 죄를 알기에 이를 감추기 위한 정치적 슬로건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미국은 세계 최강국이다. 어쨌거나 힘없으면 나라든 사람이든 찬밥 대접받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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