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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겨울 사진

by 훈 작가 2024. 7. 24.

덥습니다. 너무 덥습니다. 여름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지냅니다. 그래도 몸은 짜증스럽게 반응합니다. 본능적으로 덥고 습한 날씨가 싫은 겁니다. 신은 인간을 그렇게 만들었으니, 우린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피서라는 단어가 국어사전에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피할 피(避), 더위 서(暑), '피서(避暑)'는 숙명적으로 여름철에 우리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단어입니다.
 
예전엔 소박한 피서도 낭만적이었습니다. 그땐 아날로그 시대였습니다. 동구 밖 느티나무 그늘에서 이웃들과 수박 한쪽을 나누어 먹으며 더위를 식히곤 했습니다. 어른들은 가까운 계곡을 찾아 탁족을 즐기기도 했고요. 그럴 여유조차 없는 서민들은 툇마루에 앉아 부채질하며 매미 소리를 들으며 지냈습니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은 종일 개울가에서 물놀이하며 보냈습니다. 지금은 그런 풍경을 보기가 쉽지 않을 듯합니다. 
 
집이나 사무실에선 에어컨과 선풍기 바람에 의지합니다. 일상에선 그게 일반적인 피서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더위를 물리치기엔 역부족입니다. 그렇다고 집이나 사무실에만 있을 수도 없습니다. 불가피하게 사람도 만나야 하고 볼일도 봐야 합니다. 찜통더위와 맞서야 하는 상황에선 뾰족한 피서 방법이 없습니다. 외출 시에는 기껏해야 휴대용 손풍기나 양산 정도일 겁니다.

지구온난화의 역습이 불러온 기후변화가 실감 나게 느껴지는 여름입니다.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극한 날씨가 당혹스러운 건 사실입니다. 예년엔 장마가 7월 초에 끝났습니다. 7월 하순인데 장마가 끝나지 않았고, 중부지방에 폭우가 내릴 때, 남부지방은 폭염으로 아우성칩니다. 예측불허의 날씨에다 여름이 점점 길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짜증스럽지만 더위와 오랫동안 지내야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습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말로는 쉬운데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말을 요즘 같은 더운 날씨에 적용하면 어떻게 즐길 수 있을지 막연합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즐기라면 근처 분위기 있는 카페에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며 책이라도 읽던가, 아니면 웹서핑하며 시간을 죽이는 그것밖에 생각나지 않습니다. 혼자가 아니라면 같이 수다도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오늘도 비가 내립니다. 차라리 눈이 왔으면 얼마나 시원할까. 왜 여름에 눈이 안 오고, 비가 오는 걸까. 엉뚱한 생각을 하다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오늘은 어떤 사진을 소재로 블로그에 올릴까, 생각하며 사진 폴더를 열었습니다. 그러다 눈 내리는 사진에 시선이 멈춥니다. 보기만 해도 더위가 날아갈 듯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사진 속으로 날아갈 수 없을까. 가능하다면 이보다 좋은 피서는 없을 텐데.

하늘은 비슷합니다. 여름철 비 오는 날이나, 겨울철 눈 내리는 날이나. 그런데 왜 여름엔 눈이 안 오는 걸까. 겨울에도 가끔 비가 오듯이, 여름에도 가끔 눈이 오면 안 되는 걸까.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푸념을 하고 싶은 날입니다. 다시 사진을 보면서 여름에도 가끔 눈이 내렸으면 이렇게 게 덥지는 않을 텐데, 상상해 봅니다. 은근히 하늘을 탓하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만큼 더위가 지긋지긋합니다.
 
사진 속은 겨울입니다. 눈발 날리는 겨울사진을 보는 것도 한편으로는 피서일 수 있습니다. 지난 겨울을 생각하면 잠시 더위를 잊을 순 있습니다. 여름이면 겨울이 그립고, 추운 겨울을 생각하면 여름이 생각나는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더위가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겁니다. 늘 그랬듯이 이겨내야 합니다. 혹시 갖고 있는 휴대전화에 눈 내리는 겨울 사진이 있다면 한 번 클릭해 겨울로 떠나 보시기 바랍니다. 피서 같지 않은 피서일지라도 잠시 더위를 잊을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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