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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별을 죽인 건 너야

by 훈 작가 2024. 8. 23.
이미지 출처 : pixabay

별이 죽었습니다. 캄캄합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아있다면 밤은 별의 시간입니다. 그런데 별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별이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상했습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왜 별이 안 보이는 걸까. 누가 별을 죽인 걸까. 아니면 누가 별을 사라지게 한 걸까. 별을 죽였다면 뭔가 흔적이 남아있을 텐데. 난 우주의 미아가 되었지만, 별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럴즈음 별똥별 하나가 지나가더니 별빛이 희미하게 저 멀리서 다가왔습니다. 죽었던 별들이 돌아오기 시작한 겁니다. 그때가 밤 10시가 조금 지났을 때였을 겁니다. 오후 2시에 수술실에 들어갔으니 8시간 만에 마취에서 깨었던 겁니다. 무거운 눈꺼풀 사이로 들어온 빛이 뭉개져 몽글몽글한 별빛처럼 반짝이는 게 영롱한 별빛처럼 보였습니다. 그 순간 난 다시 별을 볼 수 있는 세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래전, 한 여름밤 별들은 할머니 주머니 속에서 주인공이 되어 나왔습니다. 밤하늘에선 또 다른 별들이 내려왔습니다. 별빛이 쏟아진다는 표현은 도심에선 만날 수 없지만, 산골 마을에선 마당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초가지붕 위로 흐르는 은하수 아래 멍석을 펴고 앉으면 어김없이 할머니가 풀어놓은 별 이야기는 하늘로 올라가곤 했습니다. 별처럼 내가 눈을 깜박깜박 일 때 뒷산에서 부엉이 소리가 들렸고, 별 이야기는 도깨비가 되어 춤을 추곤 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철 모르던 시절 여름밤이면 언제나 별들은 우릴 찾아왔고, 할머니가 별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난 그 별을 가슴에 담았습니다. 같은 동네 살던 친구들 모두 그랬을 겁니다. 얼굴에 여드름꽃이 날 무렵,  그랬던 별이  국어 교과서에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실려있던 걸 기억합니다. 내가 뤼브롱산의 양치기 목동과 스테파네트의 사랑 이야기를 읽고 나서  별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더 분명해졌습니다.
 
별의 순간을 꿈꾸고, 별의 낭만을 노래하던 그때 한동안 병실에서 있어야만 했습니다. 항상 내 마음속에 빛이 되어 주던 별, 우주의 미아가 되지 않도록 나침반이 되어 주던 별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병실에 있으면서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우린 삶과 죽음을 나누어 생각하고 떼어 놓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렇게 애쓰는 사람 덕분에 다시 잃어버린 별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신기합니다. 그랬던 내가 별을 찾기는커녕 먹고살기 바쁜 나머지 하늘 볼 여유조차 없이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별을 잊고 살았던 거죠. 게다가 그럴듯한 핑계도 있습니다. 별을 찾고 싶긴 했었는데 도심의 하늘에서 별 보기가 말 그대로 하늘에서 별 따기라는 말처럼 어려웠으니까요. 별똥별은 말할 것도 없었죠. 한 여름밤 시골에선 무심코 하늘을 쳐다보면 흔했던 별똥별이었거든요.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이 모두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별을 찾아야겠다는 다짐을 잊고 살다가 세월이 한 참 지난 지금. 다시 밤하늘을 보고 있습니다. 여전히 별이 보이지 않습니다. 죽었거나 사라진 것 같습니다. 한때 가슴에 별을 안고 살았습니다. 난 그 별을 떠나보낸 기억이 없습니다. 잊고 살은 건 맞지만 난 보내지 않았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별은 어떻게 된 걸까요. 너도나도 내 탓은 아니라고 할 겁니다. 네 탓이 아니라면 별이 스스로 사라졌다는 얘긴가요.
 
별은 우리의 꿈이고 낭만이었습니다. 그런 별이 스스로 죽을 리 만무합니다. 그렇다면 별은 죽은 게 아닙니다. 죽인 겁니다. 우린 다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여름이 열대야 때문에 난리거든요. 누군가는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있냐고도 할 겁니다. 그러면서 우린 지금 ‘별을 죽인 건 너야’ 하고 희생양을 찾고 있습니다. 사실 범인이 누구인지는 다 알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라고 말하지 않을 뿐입니다.
 
“별을 죽인 건 너야”
 
그러면서 그걸 변명하느라 이런저런 말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 기후 변화, 엘니뇨 현상, 탄소중립, 온실가스, 열돔 현상 등등. 별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별들을 죽인 적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 죽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별을 볼 수 없는 건 바로 우리 때문입니다. 별을 죽이고 있는 건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가 별을 죽이고 있는 건 다른 별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행성 지구별입니다. 그 별을 죽이면 꿈도, 사랑도, 낭만도 소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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