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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잠자리

by 훈 작가 2024. 8. 7.

잠자리가 불편합니다. 에어컨을 틀고 자면 시원하긴 합니다. 그런데 자다 보면 춥습니다. 본능적으로 리모컨을 찾아 꺼버리게 됩니다. 그렇게 한동안 잠이 듭니다. 얼마나 잤을까?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다 다시 에어컨을 켜게 됩니다. 몸이 끈적거려 잘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밤이면 밤마다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일입니다.
 
열대야와 불편한 동거를 피하기 위해선 에어컨 신세를 질 수밖에 없습니다. 전기요금이 부담스럽지만, 습한 더위와 동침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참으려다 보면 짜증이 임계점에 다다릅니다. 자칫 사소한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어 오해를 살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연일 이어지는 열대야는 잠자리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아침이면 머리가 개운하지 않습니다. 잠을 설쳐서 그럴 겁니다. 아마 이런 일이 나만의 일만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듭니다. 정상적인 신체 리듬이 깨지지 않도록 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열대야 때문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러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로 짜증을 내기라도 하면 서로 얼굴을 붉힐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집에만 있기도 그래서 나왔습니다. 출사지에 와 보면 늘 서너 사람 보입니다. 집에만 처박혀 있으면 답답하니 카메라를 챙겨 나왔을 겁니다. 그런데 날씨가 워낙 덥다 보니 사진 찍는 것도 고통 같습니다. 뙤약볕 아래서 사진을 찍다 보면 땀이 비 오듯 합니다. 어떤 때는 저절로 멍 때리기라도 하듯 멍해집니다.
 
정신 차리고 뭐라도 찍어야겠다 할 때 잠자리가 눈에 띄었습니다. 아파트 주변에선 볼 수 없는 잠자리가 도심을 벗어나면 흔하게 보입니다. 나른한 오후, 낮잠 자기 딱 좋은 시간에 졸음을 쫓을 겸 녀석이 앉기를 기다렸습니다. 녀석이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고 빙빙 맴돕니다. 쉴 자리를 찾으려는 것 같습니다.
 
드디어 앉았습니다. 살금살금 들킬세라 숨을 죽이고 다가갔습니다. 녀석이 눈치채지 않도록 최대한 접근해야 합니다. 더 이상 가까이 가면 도망갈 것 같아 멈추고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잠자리가 너무 작게 보여 더 가까이 가야 했습니다.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 초점을 맞추고 셔터를 눌렀습니다.
 
풀잎에 앉아 있는 잠자리는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는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 번 더 셔터를 눌렀습니다. 그런데도 마찬가지입니다. 녀석이 쉬는 건지 자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운동 신경이 둔하거나 간이 부어서 배짱이 두둑하다고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가까이 가도 도망가지 않으니 그런 생각이 든 겁니다.
 
잡아보려고 손을 내밀다 그만두었습니다. 혹시 녀석도 어젯밤 열대야 때문에 잠을 설쳤는지 모르니까요. 원래 곤충들의 감각기관이 예민해 위험을 느끼면 얼른 달아날 텐데 그렇지 않으니까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나저나 잠자리한테 묻고 싶었습니다. 시원한 그늘막에 가서 편히 쉬거나 잘 것이지 하필이면 왜 이런 곳이냐고.
 
잠자리는 편안해야 합니다. 사람도 잠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나마 잠자리는 형편이 나은 편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매미입니다. 밤에도 빛 공해로 잠을 자지 못하고 하소연하듯 울어 댑니다. 하지만 인간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오늘 밤도 매미들은 아우성칩니다. 제발 잠 좀 자자고…. 여름 내내 잠자리가 불편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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