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시골 촌뜨기로 자랐습니다. 동구밖을 지나 들에 나가면 메뚜기가 지천으로 깔려있었습니다. 논두렁 길이나 콩을 심어 놓은 논 언저리 길을 걸으면 후드득 뛰는 메뚜기를 정신없이 잡아 강아지풀에 메뚜기를 주렁주렁 엮었던 추억이 아련합니다. 메뚜기를 한참 잡다 보면 녀석들이 붙어 짝짓기 하는 걸 한 번에 잡는 일도 있습니다. 두 마리를 잡은 거죠. 사람이나 메뚜기나 사랑을 할 땐 정신없는 모양입니다. 그땐 왜 녀석들이 붙어 있는지 몰랐었죠. 세월이 지나고 보니 웃음이 납니다. 아마 지금 같았으면 잡지 않았을 겁니다.
많이 잡아 올 경우 어머니께서 도시락 반찬으로도 싸 주시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메뚜기를 뜨거운 물에 한 번 데친 후, 물에 한두 번 씻은 다음, 후라이팬에 간장과 기름을 적당히 부어 볶았습니다. 메뚜기가 붉은색으로 서서히 변하면서 바스락거리며 익는 소리가 날 때까지 볶았던 것 같습니다. 다 볶으면 뜨거운 걸 손으로 집어 입으로 '호호'하며 분 다음 입에 넣으면 까칠까칠한 느낌이 있긴 하지만 약간 짠맛이 나면서도 고소한 맛이 났습니다. 씹으면 씹을수록 비스킷 같은 과자 맛처럼 고소하고 쫀득쫀득하니 먹을 만했습니다.
출사지에서 우연히 메뚜기와 마주쳤습니다. 친근한 느낌이 들어 일단 셔터를 누르고 봤습니다. ‘메뚜기’ 하면 떠오르는 말이 있습니다. 혹여 방송인 유재석 씨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메뚜기도 (6월이) 한철이다.”라는 말입니다.
누구든 들어 봤을 겁니다. 흔히 했던 말입니다. 메뚜기가 때를 만난 듯이 ‘한창’ 날뛰어 봤자 음력 6월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마치 때를 만난 듯이 거드럭거리며 뽐내는 사람을 보고 비아냥 조로 하는 말입니다.
‘한창’이란 말은 가운데라는 의미입니다. 과일, 채소, 생선이 한창 수확되거나 쏟아져 나올 때를 ‘한물’이라 하고, 그때가 지나면 ‘한물갔다’고 합니다. 이때 ‘한물’에서 ‘한’은 ‘한창’이라는 뜻입니다. 한여름은 ‘한창’ 더운 여름이고, 한겨울은 ‘한창’ 추운 겨울이며, 한밤중은 깊은 밤을 뜻하고, 한낮은 낮의 한가운데. 낮 열두 시를 전후한 때를 이르는 말입니다. “메뚜기도 한철이다.”에서 ‘한철’은 한가운데 즉, 전성기를 뜻합니다.
누구나 한철(전성기)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금방 지나갑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왔는지 지나갔는지 모르는 경우입니다. 그런 사람이 마치 때를 만난 듯이 거들먹거리며 허세를 부리고 거만을 떨면 메뚜기처럼 한철만 사는 사람일 겁니다. “메뚜기도 (6월이) 한철이다.”라는 말의 뜻을 제대로 알고 겸손한 자세로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보며 이 계절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인생은 메뚜기처럼 한철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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