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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바람은 죄가 없다.

by 훈 작가 2024. 10. 2.

이해 못 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왜 싫어하는지. 사실 모든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몇몇 사람입니다. 내가 특별히 그들에게 민폐를 끼치거나 잘못한 건 없습니다. 그런데 단지 바람이란 '이름' 때문입니다. 바람이란 이름도 사람들이 지어 붙여 놓은 겁니다. 그래 놓고 나를 미워하니 더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궁금하다면 어떤 사람들인지 말하겠습니다. 남녀불문하고 딴짓하는 사람들, 특히 외도하는 사람, 어엿한 애인이 있는데 몰래 다른 사람을 만나는 사람, 모두 바람피운다고 바람을 싫어합니다. 약속 장소에 상대가 나타나지 않을 때 또 바람맞았다고 바람을 싫어합니다. 도대체 그게 왜 나와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부들도 가끔은 날 싫어합니다. 마트나 시장에 가서 장을 봅니다. 장을 보다 보면 과일도 사고 채소도 사게 됩니다. 그런데 개중에 사과나 배를 잘못 샀는지 바람들었다고 싫어하고, 무나 당근 같은 채소도 마찬가지로 바람 들었다고 투덜댑니다. 그게 왜 나와 무슨 관계입니까. 내가 무슨 죄가 있는 겁니까.

이미지 출처 : pixabay

그뿐 아닙니다. 한때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부동산 투기 바람, 치맛바람도 있습니다. 춤바람도 있었고요. 인간 세상에 부는 이런저런 바람 많이 있습니다. 모두 나와는 무관합니다. 연관성이 1(일)도 없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말합니다.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내가 틀린 말 안 했죠.

 

난 죄가 없습니다. 내가 왜 거기에 끼어들어 욕을 먹어야 합니까. 솔직히 억울합니다.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름엔 더운데 왜 바람 한 점 없냐고 원망하는 건 그래도 참을 수 있습니다. 겨울에 나 때문에 감기 들고 춥다고 하는 것도 그러려니 하겠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있는 날 끄집어들여 바람피우니, 바람 들었니 하는 건 문제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난 보이지 않습니다. 잡을 수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법을 좋아합니다. 무슨 문제가 있으면 법을 잘 따지지 않습니까. 혹은 법대로 하자고.’ 큰 소리 뻥뻥 칩니다. 사람들 말대로 법대로 하자면 나는 무죄입니다. 증거가 없으니까요. 있다면 제시해 보시던가. 내 말이 맞죠. 왜 꿀 먹은 것처럼 가만히 있는 거죠.

 

당신들이 기다리던 가을이 왔습니다. 엊그제까지 더워서 난리 쳤죠. 더워죽겠다고. 그러더니 아침저녁으로 선선하다며 날 또 반깁니다. 계절이 바뀌면서 내가 시원하게 다가가니 싫지 않은 거, 다 압니다. 난 속세의 인간들과 아무런 감정 없습니다. 애꿎은 날 갖고 이렇다 저렇다 왈가왈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예쁘게 봐주는 사람들이 있어 고맙게 생각합니다. 가을이 되면 나를 소슬바람이라 불러주기 때문입니다. 한자로 쓸쓸한 소()에, 검은고 슬()을 붙인 이름이라니 너무 아름답잖아요. 25줄의 거문고에서 나는 소리같이 쓸쓸하다는 의미랍니다. 이 가을 나는 소슬바람이 되어 그대가 외롭지 않게 여러분 곁에 머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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