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를 보면 부러움을 느낍니다. 하늘을 난다는 것, 자유롭다는 것, 한 번쯤 그런 생각을 해 본 사람이 많을 겁니다. 이유는 다 알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싶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단지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싶다면 꿈에서 새가 되어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차피 우린 날개가 없습니다. 그러니 날지 못하는 걸 부럽다고 쳐도 자유롭다는 걸 부러워하는 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럼, 우리가 자유롭지 않다는 건데, 과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우린 자유를 누리고 있으니까,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겁니다. 감방에 갇혀 있는 죄수가 아닌 이상.
자유는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이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우린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수많은 피를 흘린 역사를 기억합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얻은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사는데 가끔 새를 보면서 막연하게 자유로움을 부러워합니다.
그것은 유일하게 새만이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인간은 부러움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꿈을 실현시킨 거죠. 하늘을 나는 꿈을. 새처럼 자유롭진 않더라도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누리고 싶은 자유를 누리기 위해 인간은 끊임없이 과학의 영역에서 기술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인간은 자유를 구속하면 참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그 어떤 힘으로 억압하고 누르려 해도 누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면 자유를 구속하려는 모순적인 존재입니다. 자유가 인간에게만 소중한 가치라고 여깁니다. 사실 인간의 자유만 소중한 건 아니거든요. 자유는 모든 생명체에게 소중한 가치입니다.
어쩌면 많은 동물 중에 새만 부러움의 대상일 겁니다. 흔한 소, 돼지나 닭을 부러워한다는 말을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간혹 반려견인 개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정말 부러워서 하는 소리는 아닐 겁니다. 그러나 함부로 대하면 동물학대죄로 처벌받을 수 있으니 개 팔자가 상팔자인 세상으로 비칠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가축이라고 부르는 소, 돼지, 닭을 보면 개와 달리 인간이 철저하게 자유를 짓밟습니다. 사육환경을 보면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최소한의 자유도 없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먹고 자고 살찌는 것뿐입니다. 다른 건 없습니다. 오로지 우리의 식탁에 오르기 위해서죠. 녀석들에게 삶은 자유 없는 감옥 그 자체입니다.
불쌍하죠. TV 프로그램 ‘동물의 세계’ 나오는 주인공들과 너무 다릅니다. 녀석들은 주어진 자유를 누리며 삽니다. 그나마 대관령 목장의 소들은 행복한 겁니다. 방목으로 키우니까요. 친환경 사육으로 방목해서 키우는 돼지나 닭도 어느 정도 자유를 누립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밀집 상태로 키우진 않거든요.
자유를 구속받으면 스트레스받습니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몸에 해롭습니다. 스트레스받은 소, 돼지, 닭은 좋은 품질의 고기로 식탁에 오를 수 없습니다. 자유를 누리며 사육된(방목) 가축(친환경 사육)을 키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유를 소중히 한다면 사육 방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위해서라면.
자유는 소중합니다. 인간에게만 소중할까요. 아닙니다. 서로를 위해서 소중합니다.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권리가 있습니다.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요. 아무리 인간이 기르는 가축이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자유를 누리다 갔으면 좋겠습니다. 녀석들도 그 정도의 자유는 누려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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