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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아포리즘

사라짐은 아름다워야

by 훈 작가 2024. 9. 10.

수많은 찰나의 순간이 모여 시간이 되고, 그 시간 시간이 모여 오늘이 됩니다. 반복되는 오늘이 살아 숨 쉬는 삶이 됩니다. 그 삶 속에는 생명의 시간이 존재합니다. 시간은 모든 생명을 지배합니다. 하지만, 시간 속에서 내가 사라지는 순간 란 정체성은 없어집니다. 그게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삶과 죽음입니다.

 

찰나(刹那)는 불교에서 말하는 시간의 최소 단위로, 지극히 짧은 시간을 뜻합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인지 알 수 없지만, 대략 75분의 1초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린 75분의 1초가 얼마나 짧은 시간인지 모릅니다. 그냥 말로 표현한다면 눈 깜빡할 사이일 겁니다. 그것이 순간(瞬間)입니다. 그런데 순간은 ‘찰나보다 길다고 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건 생겼다(生), 없어집니다(滅). ‘오늘이란 시간은 대개 태양이 머물러 있는 시간 동안 일상을 말합니다. 물론 빛이 없는 새벽과 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린 빛이 없는 시간 동안 활동을 멈추고  잡니다. ‘오늘이란 시간 속에 유일하게 찰나의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거나 느끼지 못하는 시간입니다.

꽃지 해변에 왔습니다.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해가 사라지면서 연출하는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으려 온 겁니다. 찰나의 시간이 만든 아름다움과 그것이 모여 보여주는 황홀한 낙조(落潮)의 순간을 느끼고 싶은 겁니다. 찰나와 순간이 연출한 시간을 그대로 사로잡아 사진 속에 가두어 두고두고 꺼내 볼 생각입니다.  

 

해가 넘어가는 건 늘 있는 자연의 현상입니다. 그런데 일몰 직전 찰나의 시간과 직후 노을이 물든 아름다움의 절정이 무언의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태양이 스스로 만든 오늘이란 시간의 무대에서 퇴장하는 순간, 멋진 뒷모습을 보여주듯, 우리의 인생도 그렇게 살다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삶의 여정 마지막 순간은 꽃처럼 시들고 지기 마련입니다. 피할 수 없는 노화의 과정입니다. 나이가 들면 어느 날 불쑥 세월의 야속함에 서럽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음에 탄식이 절로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몰의 순간처럼 찰나와 순간이 만든 내 인생역정도 사라질 때 아름다웠으면 좋겠습니다. 해가 사라진 꽃지 해변의 모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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