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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행복, 그대와 춤을

청개구리

by 훈 작가 2024. 9. 14.

청개구리 같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공부해라, 공부해라하는 엄마 말을 한 번도 들을 적이 없습니다. 어쩌다 한 번은 하는 척하긴 했어도 실제로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때 엄마 말대로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아마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거라 생각합니다. 어른들 말은 틀리지 않거든요.

 

어른이 된 지도 오래된 지금, 가끔은 청개구리 같은 행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 친구들과 술 한잔하다 보면 그런 행동이 나옵니다. 별로 잘 난 것도 없으면 잘 난 척하거든요. 물론 술김에 하는 행동이긴 하지만, 언행에 진심이 아닌 가식이나 허풍을 떠는 거죠. 부질없는 짓인데 남자끼리 그놈의 자존심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뿐만 아닙니다. 나보다 못했던 친구의 성공에 겉으론 박수를 치지만, 속으론 부러워 질투하는 것도 그렇고, 남 앞에서는 부처님 같은 언행을 하면서 실제로는 그렇지 않거나, 정직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변명 같지만 살기 위해서였죠. 생각해 보면 청개구리였던 적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보은군 탄부면 임한리 솔밭에 왔습니다. 안개 낀 몽환적 솔밭 풍경을 기대하고 왔는데 완전 꽝입니다. 그냥 돌아가기가 그래서 누렇게 익어가는 논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우연히 마주친 청개구리. 반가웠습니다. 잘 됐다 싶어 카메라를 들이대도 꿈적하지 않습니다. 녀석이 청개구리가 맞나 싶었습니다. 어라, 내 말을 너무 잘 듣는 거 있죠.

녀석은 내가 알고 있는 청개구리가 아니었습니다. 사진 찍는 동안 움직이지 말라고 하니까, 정말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착한 청개구리 같습니다. 우리에게 청개구리는 불효자나 말 안 듣는 사람을 일컫는데, 그런 청개구리와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적어도 내가 사진을 찍는 동안 녀석은 그랬으니까요. 사진을 보면 잘 아실 겁니다. 정말인지, 아니지.

 

그럼 내가 알고 있는 청개구리 이야기가 어떻게 나온 걸까. 궁금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검색해 보았습니다. 검색창에 '청개구리' 하고 치니 금방  나옵니다. 정말 좋은 세상입니다. 알고 보니 조선시대 인조반정의 주역이었던 이괄’이 주인공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그저 누군가 지은 동화인 줄로만 생각했거든요.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오빈리와 양근리 사이 강가에 홀로 떨어져 있는 조그마한 바위섬이 있는데, 그곳이 청개구리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떠드렁산이랍니다. 충주(忠州)에서 떠내려왔다고 하여 충주산이라 불리기도 하고, 떠내려왔다고 해서 떠드렁산이라 합니다. 한자로는 부래산(浮來山)으로 표기합니다.

 

이괄은 청개구리 이야기는 바로 여기와 관련이 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공을 세웠지만, 이후 반역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억울한 모함을 받고 군사를 이끌고 난을 일으켰으나 실패한 인물입니다. 어린 시절 이괄은 청개구리처럼 아버지가 시키는 일을 무엇이든 반대로 했던 모양입니다.

평소 풍수지리에 관심이 많았던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이 죽으면 용문산의 정기가 힘차게 뻗어 강가에 있는 떠드렁산에 묻어 달라고 했답니다. 아래로 강이, 위로 산이 있는 명당자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곳은 시신의 머리가 강 쪽으로 가도록 반대로 묻어야 후손들이 번창할 수 있는 명당이었습니다.

 

이에 이괄의 아버지는 죽기 전 아들에게 "시신의 머리가 산을 향하는 자세로 바로 묻어달라고" 유언했답니다. 그래야 아들이 반대로 할 것이라고 여겼던 겁니다. 하지만 이괄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묘지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차마 죽은 아버지의 유언을 거역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이괄의 아버지는 원래 반은 용이고, 반은 사람이라 반대로 묻어야 사후 용으로 승천할 수 있는데 아들이 아버지의 유언대로 묻어 용으로 승천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이괄의 난이 결국 실패하면서 이야기가 널리 퍼졌다고 합니다. 양평에 가면  ‘청개구리 이야기내용을 알리는 안내문이 떠드렁산 앞에 있다고 합니다. (퍼온 글)

 

앙증스러운 청개구리 사진 아니었으면 몰랐을 겁니다. 어린 시절 청개구리 이야기의 주인공이 ‘이괄’ 이었다는 사실을. 청개구리 덕분입니다. 마음먹었던 솔밭 풍경을 찍지 못했지만, 나름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지나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때론 작은 관심이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하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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