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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해를 품은 달, 아니 물

by 훈 작가 2024. 9. 25.

사진을 찍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신비함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예기치 않은 신비함에 몰입하다 보면 한동안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없는 겁니다. 수많은 시간을 그냥 지나쳤던 자연현상, 바로 윤슬입니다. 호수가 있는 곳에 일출 사진을 찍으러 다니다 보면 늘 보아 왔던 빛입니다.

 

이른 아침 해 뜰 무렵 또는 저녁때 해가 질 때쯤 호수나 강가를 거닐 다 보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물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잔잔한 물결 위로 햇빛이 반사되는 현상이 윤슬입니다. 누가 이름을 지었는지 모르지만, 우리말이 아름답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아 절로 감탄사가 나옵니다.

 

윤슬. 관심 없이 지나치면 사실 별거 없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윤슬의 신비함을 볼 수 있습니다. 문득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시가 생각납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입니다.

윤슬이란 말에 딱 어울리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호수에 반영된 일출 사진을 찍었습니다. 꼬리를 흔들 듯 햇빛이 일렁이는 호수 위로 길게 뻗어 내 앞으로 오고 있습니다. 아침 바람이 부드럽게 불지 않았다면 이런 일출 사진은 찍을 수가 없습니다. 사진을 찍고도 빛이 처음엔 특별하지도, 신비하게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무심코 호숫가로 다가갔습니다. 윤슬 현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그 순간 수많은 아침 해가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단순한 윤슬로만 보였던 물빛이 아니었습니다. 오래전 드라마 제목처럼 해를 품은 달이 아니라 해를 품은 물이었습니다. 여태껏 알지 못했던 윤슬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한 겁니다.

 

반짝이는 물빛을 보석처럼 보였습니다. 보석의 실체는 아침 해였습니다. 사진 속에 아주 작은 태양이 여기저기 반짝입니다. 단순한 발견이지만, 나에겐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윤슬은 물이 해를 품어 만든 아름다운 빛의 향연이었던 걸 지금 알았습니다. 물이 어떻게 수많은 해를 품어 아름다운 빛을 만들어 냈는지, 자세히, 오래 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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