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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노을에 빠지다

by 훈 작가 2024. 10. 3.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이 순간만은. 그 어떤 형용사로도 표현하기 힘듭니다. 그래도 생각나는 대로 써 보았습니다. 아름답다. 황홀하다. 환상적이다. 끝내준다. 멋지다. 과연 어떤 말이 이 상황에 딱 맞는 단어일까. 고르지 못하겠습니다. 정말 모르겠습니다. 단지 사진을 찍고 있는 이 순간조차도 아깝다는 생각만 듭니다.

 

노을 지고 있는 서쪽 하늘을 이르는 말입니다. 해 질 무렵 노을을 한두 번 본 게 아닙니다. 그때마다 노을은 다 그런 거지 하며 지나쳤습니다. 때론 아름다웠고, 때론 멋졌습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잠시 노을 지는 풍경에 눈길을 던지긴 했어도 심장을 마구 두들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영혼을 유혹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얘기입니다.

 

빼앗긴 마음을 진정시켰습니다. 두근거리는 심장도 꽉 눌렀습니다. 그다음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눌렀습니다. 시간의 궤도 위에 머무는 건 순간이고 찰나입니다. 그래도 다행이었습니다. 순간과 찰나의 시간을 붙잡아 사진에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이. 사진을 취미로 즐기지만 흔하게 만날 수 있는 풍경이 아닌 게 분명하거든요.

 

! 하고 짧게 탄성만 질렀습니다. 그게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 라는 감탄사 한 마디에 모든 게 다 들어가 있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합니다. 여기에 아름답다. 황홀하다. 환상적이다. 끝내준다. 멋지다는 의미가 있을 겁니다. 유명한 시인이 이 순간을 보고 표현한다면 어떻게 할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시간이 멈추었으면 하는 게 솔직한 마음이었습니다. 대개 사랑에 빠지면 시간 가는 게 아쉽다고 합니다. 더 오래 있고 싶은데 왜 시간이 빨리 가는지 하고요. 한 번쯤 경험했을 추억일 겁니다. 이와 비슷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전혀 다른 상황일 겁니다. 인위적으로 재현될 수 없는 신의 영역이거든요.

 

제목을 '노을에 빠지다'라고 한 것은 사랑에 빠지면 나오기 싫듯, 이 순간에 푹 빠져 그대로 멈추었으면 하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딘가에 빠지면 나와야 합니다. 그게 깊은 물이나 늪이든, 아니면 술, 도박, 여자, 마약이든. 사랑도 불륜이면 마찬가지입니다. 이렇듯 빠진다는 것은 긍정적이지 못한 뜻이 많습니다.

 

하지만, 지금 보고 있는 노을은 다릅니다. 빠지고 싶어도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난 노을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 같은데 노을은 저만치 도망가고 있습니다. 마치 이태백이 달밤에 그토록 사랑한 달을 품에 안으려 호수에 풍덩하고 뛰어든 상황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설령 그럴지라도 노을에 빠진 게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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