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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아포리즘

가을담장

by 훈 작가 2024. 12. 19.

가을이 담장 위에 걸려 있습니다. 푸른 시절, 품에 있던 꿈과 낭만을 내려 놓고 떠난 별들의 사랑은 전설이 되어 떠났습니다. 까마득한 날, 별빛은 이슬이 되어 다시 왔고, 가을만 훌쩍 돌담 위 나무에 걸어 놓고 간 이유는 떠날 때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일 겁니다.
 
밤새 별들이 놀며 속삭이다 남긴 이야기가 하나둘 떨어집니다. 떠나야 함을 알지만, 왠지 조금 더 머물고 싶은 건 아쉬움 때문일 겁니다. 이제 이 담장만 넘으면 가을은 당신 곁을 떠날 겁니다. 이별의 경계가 된 담장을 사이에 두고 머지않아 하얀 나그네가 다가 올 겁니다.

왜, 이렇게 가을에 떠나는 이별이 사무치는지 모르겠습니다. 파르라니 떨리는 가을의 끝자락은 늘 바람에 실려 낙엽이 되어 고독한 내 마음을 헝클어 놓곤 했습니다. 미련 때문에 이 담장을 넘어가기 싫었던 겁니다. 예고된 이별이라 서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제 가렵니다. 이별은 추억이란 이름의 행복을 가을 담장에 걸어 두고. 떠나더라도 당신이 생각날 때면 우리가 남긴 행복의 추억을 떠올리며 가을 담장을 생각하렵니다. 가끔은 정겨웠던 시간이 그리울 겁니다. 당신과 내가 담장을 사이에 두고 눈맞추었던 그때가. 아마 당신도 그러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게 부질없습니다. 세월의 담장을 넘으면 잊기 마련이니까요. 잊을 때 잊더라도 옛 생각이 날 때면 당신과 내가 담장 길을 걷던 추억을 떠올리며 그리움을 달래렵니다. 그리고 긴긴 가을밤 외로워하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 둘이 만든 추억이 있고, 담장 길을 같이 걸었던 가을이 너무 행복했으니까요.
 
가을은 누군가에게 사랑이었고, 누군가에게 이별이었습니다. 담장 넘어 떠나는 가을을 이젠 놓아주렵니다. 그리고 사랑과 이별이 인연을 이어 준 이 가을의 시간이 모두에게 행복으로 남았으면 합니다. 가을을 사랑했던 것처럼 우린 이 계절과 이별해도 삶의 인연은 아름다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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