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부른다. 난 거실 창가로 다가가 그를 만난다. 유리창에 부딪히는 그의 슬픈 몸부림이 아프게 가슴을 적신다. 아련한 추억 한 방울이 스며들더니 시간을 붙잡고 거꾸로 돌린다. 홀연 먼 기억속으로 날아간 나는 한적한 시골역에서 내렸다. 나뒹구는 낙엽이 숨을 멈춘 채 처연하게 누워있다. 이별이 남긴 고독이다. 가을비가 내게 아픔이 되어온다.
가을비는 묻는다. 지난여름 떳떳하게 지냈냐고. 대답하지 못했다. 한 점 부끄럼 없는가 뒤돌아본다. 하늘을 볼 수 없다. 숨어야 했다. 나뿐이 아니다. 저마다 머리 위에 빨간 지붕, 파란 지붕, 까만 은신처를 만들어 숨는다. 우리 모두 부끄러운 여름을 보낸 탓이다. 가을비는 하늘이 우릴 대신 흘리는 참회의 눈물이다.
나그네가 되어 떠나는 가을을 만났다. 녀석이 울고 있다. 외로운 거다. 가을비는 삶이란 은신처에서 추방된 서러움의 눈물이다. 사람들은 삶이란 우산을 쓰고 피난을 떠난다. 버려진 가을은 비에 젖어 죽음을 기다릴 뿐이다. 그래도 한 세상 아름답게 살았다. 그럼에도 가을은 죽어도 죽는 게 아니다. 죽은 가을은 한 편의 시가 될 뿐이다. 시간이 남긴 추억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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