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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행복, 그대와 춤을

올해를 11장의 사진으로 표현한다면

by 훈 작가 2024. 11. 27.
1월 : 쉼의 행복

쉰다는 말은 노동의 관점에서 보면 달콤한 말입니다. 하지만, 은퇴와 관련해 생각하면 반대일 겁니다. 퇴직한 친구들을 보면 쉬는 걸 참 힘들어합니다. 한마디로 놀 줄 모르는 거죠. 어차피 누구나 때가 되면 현역에서 물러나야 하잖아요. 공짜로 주어진 인생입니다. 누리지 못하면 슬프죠. 그래서 겨울바다 구경하러 아내와 같이 나섰습니다. 차가운 바닷가에 조그만 배 한 척이 눈에 보였습니다. 현역에서 물러나 쉬고 있는 것처럼 평화로워 보입니다. 
 

2월 : 정월대보름

소원을 빌었습니다. 번번이 신춘문예 도전에 떨어졌거든요. 욕심인 거 잘 압니다. 그래도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빌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어쩌다 글을 쓰게 되었죠. 취미로 시작한 사진과 글쓰기가 일상화되다 보니 이왕이면 하는 생각이 든 겁니다. 사실 글과 문학에 관한 한 문외한입니다. 배운 적도 없죠. 어설프게 인터넷을 통해 소설작법을 읽어 본 게 전부이니까요. 창작의 길이 고통이라지만, 글 쓰는 게 즐겁습니다. 어쨌든 달님이라도 도와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3월 : 화엄사 홍매화

사진애호가 사이에 성지라 불릴 만큼 유명한 곳입니다. 나도 언젠가 찍어봐야 했던 곳입니다. 항상 마음에만 머물렀던 곳이죠. 집에서 너무 멀거든요. 해마다 3월이면 가봐야지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마음 같지 않더군요. 기필코 올해는 가봐야지, 마음먹고 새벽잠을 설치며 내달렸습니다. 도착하니 벌써 좋은 자리는 사람들로 꽉 찼더군요. 어쩔 수 없이 비탈진 곳에 엉거주춤 자세로 셔터를 눌렀습니다.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3월이 행복했습니다.  

4월 : 벚꽃엔딩

 
벚꽃시즌이면 명소마다 상춘객들로 넘칩니다. 꽃보다 사람구경을 하는 셈이죠. 벚꽃이 눈처럼 날리는 걸 보고 환호하죠. 좋긴한데 그럴듯한 벚꽃엔딩 풍경을 사진에 담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4월 내내 벚꽃사진을 찍으러 다니며 안타까웠죠. 말 그대로 벚꽃엔딩에 걸맞은 사진을 찍고 싶었거던요. 그러다 찾은 곳이 서산한우목장이었습니다. 사유지라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분위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마침내 마음에 드는 벚꽃엔딩을 찍었습니다.

5월 : 청보리밭

 
청보리 축제가 한창인 고창 학원 농장입니다. 봄햇살을 받은 봄바람이 보리밭 사이로 '휘-익' 불어댑니다. 넘실대는 보리밭이 은빛처럼 반짝입니다. 일렁이는 초록물결이 바다처럼 잔잔한 파도를 만들어 냅니다.
 
'쏴~악 스르르, 쏴~악 스르르'   
 
아, 이런 게 힐~링인가. 바람이 이처럼 아름답게 들렸던 기억이 없습니다. 신록의 계절이 실감 납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이곳 청보리밭만은 힐-링의 5월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6월 : 탐욕의 블랙 홀

 
더워도 너무 덥습니다.  6월인데 한낮에는 30도를 오르내립니다. 사진을 찍겠다고 꽃밭에 들어온 지 한 시간이나 지났습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지,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사진이 좋다지만, 뙤약볕 아래에서 내가 지금 뭐 하는 걸까? 좋게 말하면 열정일 겁니다. 그늘막에 가서 쉬면 그만인데, 그게 잘 안됩니다. 더 멋진 사진을 찍고 싶은 욕망 때문이죠. 나 자신이 탐욕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6월이었습니다.  도대체 사진이 뭐길래. 
 

7월 : 무아지경

 
몰입할 때가 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죠. 재미있는 소설을 읽을 때처럼, 사진을 찍을 때도 그렇습니다. 7월이면 연꽃이 한창입니다.  여기저기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일벌들이 꿀을 따러 온 겁니다. 녀석들이 꽃에 들어오면 데이트를 즐기는 건지 한참 동안 머무릅니다. 마치 무아지경에 빠진 것처럼.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연꽃 안에 머무르고 있는 녀석에 초점을 맞추고 셔터를 연신 누르죠. 나도 모르게 무아지경에 빠지게 됩니다.

8월 : 나도 관종일까

블로그를 시작한 지 1년 4개월째, 초심을 잃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회수나 구독자 수를 의식하기 시작한 겁니다. 시작할 땐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러다 어느 날 접한 단어가 '관종'이었습니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랐죠. 알고 보니 타인에게 관심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사실 '나만의 놀이터'라 생각하고 시작했습니다. 사진과 글쓰기를 하니까, 그걸 포스팅하면 되겠다 싶었거든요. 다시 다짐해 봅니다. 처음 시작 그마음 그대로.
 

9월 : 메뚜기도 한철이다.

 
메뚜기도 한철이다. 많이 들어본 말입니다. 누구나 인생의 전성기가 있습니다. 몇년전 명예퇴직을 하면서 아, 나도 이젠 인생의 전성기가 다 지났구나 생각했습니다. 순간 삶이 허무하고 서글퍼지더군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니까요. 사회생활의 종착역에서 느낀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인생의 전성기는 지금부터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상의 구속에서 벗어나 무한자유를 얻었거든요. 즐기기만 하면 됩니다. 마음껏. 그렇게 생각하고 은퇴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10월 : 산, 왜 오르려고 하는가

 
산에 오릅니다. 저마다 이유가 있죠. 성취감이든, 쾌감이든, 취미든, 건강을 위해서든. 사진을 좋아하는 나는 단순합니다. 좋은 경치를 카메라에 담으려고 오릅니다. 가을은 단풍과 함께 그 어느 때보다 경치가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듯합니다. 예년 같지 않거든요. 단풍이 지각한 거죠. 기후온난화 탓인 모양입니다. 이러다 산에 올라도 멋진 풍경을 보지 못할까 걱정입니다. 

11월 : 벗어야 아름답다

 
일출은 언제 봐도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어디서 일출을 보느냐에 따라 그 정도가 다릅니다. 수리티재는 일출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명소 중의 한 곳입니다. 때를 기다렸습니다. 안개가 언제 끼는지. 마침 그때를 만났습니다. 여명과 함께 가을안개가 덮인 산 아래에선 모릅니다. 벗어야 아름다운 걸. 아침해가 실오라기 같은 속옷을 벗고 올라오는 모습을 보면 정말 아름답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거짓과 위선을 벗어야 아름다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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