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열락(悅樂)에 있다.
내가 친구들과 술 한 잔 기울일 때 많이 하는 말입니다. 모르는 친구들은 열락(悅樂)이 뭐냐고 묻습니다. 기쁠, 열(悅)에 즐길, 락(樂)이라 말하면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럼에도 기쁨과 즐거움의 차이가 뭔지 아느냐고 물으면 그게 그거 아니냐고 말합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기쁨은 노력이나 힘든 과정을 통해 성취에서 얻어지는 행복이고, 즐거움은 놀이나 취미 같은 체험을 통해 느끼는 행복이라고. 여기서 즐거움은 재미가 없으면 느끼지 못하지만, 기쁨은 이와 무관하게 결과를 얻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게 화엄사 홍매화 사진은 로망이었습니다. 사진 대가(大家)들의 홍매화 사진을 볼 때마다 나도 저런 사진을 꼭 찍어봐야지 하고, 마음먹은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집에서 새벽 3시에는 일어나 준비해야 하니까, 그게 귀찮았던 겁니다.
세상은 뭐든지 때가 있는 법. 춘삼월로 접어들면서 때를 보았습니다. 이제나저제나 하며. 그러던 차에 드디어 굳게 마음먹었죠. 3월 27일 새벽에 출발하기로. 그날 호남고속도로와 순천-여수 간 고속도로는 짙은 안개가 깔렸었죠. 거북이 달리듯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둠이 사라진 화엄사에 도착하니 이미 전국에서 몰려든 사진 애호가들이 명당자리는 다 차지했더군요. 서둘러 포토 존으로 올라갔습니다. 어렵사리 비탈진 곳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자릴 잡았습니다. 삼각대 놓을 자리는 아예 생각할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래도 감지덕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만한 틈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는 사이에 앞에서 고성이 오갔습니다. 카메라 화각에 불청객(다른 사진 애호가)이 끼어들어 말싸움이 벌어진 겁니다. 많이 알려진 출사지에 가면 종종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볼썽사납죠. 어린아이들도 아니고.
그러거나 말거나 자세를 잡고 셔터를 눌렀습니다. 그 순간 스님이 나타났습니다. 오호라! 이때를 놓칠세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다행히 나름 그럴듯한 한 컷을 건졌습니다. 그다음부터 기다림의 시간입니다. 해가 떠야 하거든요. 뒤쪽에서 빛이 내려야 고혹적인 홍매화를 담을 수 있는 곳입니다. 역광으로.
그런데 해가 아니라 안개가 밀려오더군요. 일단 셔터를 눌렀죠. 그때 모델로 보이는 여인도 등장했습니다. 속으로 운이 좋다 쾌재를 불렀죠. 덤으로 그것까지 담았습니다. 하지만 그날 아쉽게도 안갯속에 기대했던 햇빛은 물 건너갔습니다. 다들 아쉬워하며 자릴 떠났습니다.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잖아요. 실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티 내지 않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희열을 만끽했습니다. 흥분이 가시지 않더군요. 마치 세상을 다 얻은 마음이었습니다. 행복 별거 있나요. 내 안의 나를 기쁘게 해 주는 겁니다. 그건 만들어야 합니다. 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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