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이 생각날 듯한 풍경입니다. 감나무 아래 장독대가 보입니다. 따뜻한 가을 햇살을 벗 삼아 할머니가 앉아 있습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한쪽을 쳐다 바라봅니다. 학교에서 돌아올 손자를 기다릴지도 모릅니다. 어릴 적 내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면 늘 동구 밖에 할머니가 계셨거든요.
정겨워 보이기도 하고,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 보이기도 하고, 거동이 불편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럴 겁니다.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허리도 제대로 못 펴고 논농사 밭농사를 지으셨을 겁니다. 어쩌면 몸이 성하지 않은 게 당연할 정도로 고생하셨을 겁니다. 우리 할머니도 그러셨거든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 것 같습니다.
빼놓을 수 없는 게 있습니다. 할머니의 옛이야기는 자장가였습니다. 깊어 가는 가을밤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잠이 들곤 했습니다. 가을이 오면 늘 할머니를 보챘습니다. 아침 일찍 깨워 달라고. 이유가 있습니다. 익지도 않은 파란 감을 동네 아이들이 주워가기 전에 먼저 차지하기 위해서였죠.
어쩌다 다른 아이들이 나보다 일찍 일어나 땡감을 다 주워가면 나는 철없이 할머니 탓하며 심술을 부렸습니다. 그런 손주를 위해 할머니는 일찍 일어나 나랑 같이 동네 우물이 있는 감나무집에 가곤 했었습니다. 주워 온 땡감을 물항아리에 넣어 우려먹던 그 시절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칩니다.
할머니는 언제나 내 편이었습니다. 공부 안 한다고 엄마한테 혼날 적에도 할머니 뒤로 숨으면 엄마도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할머니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돌아가셨습니다. 늦가을이었죠. 밤늦게 우체국에 걸어가 아버지가 써 준 대로 고모 댁에 전보를 보내는 심부름을 가면서 울먹였던 기억이 납니다.
이젠 감나무 아래에서 할머니가 손자를 기다리는 그런 시대가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손주 녀석 돌보느라 육아 독박을 감당해야 하는 시절인지도 모릅니다. 맞벌이 아니면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니까요. 자식들 키우기도 힘들었는데 손주들까지 돌봐주어 하다니, 씁쓸합니다.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는데 왜 아날로그 시대가 그리운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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