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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장 특별했던 계절은? 겨울입니다. 엊그제 갑자기 그해 겨울이 생각났습니다. 그해 겨울은 참 길었습니다. 봄이 왔지만 겨울같은 봄이 왔거든요. ‘서울의 봄’이라 불리었던 그해 봄은 1979년 겨울 12월에 잉태되었습니다. 음산했던 그해 겨울밤, 군홧발에 '서울의 봄'이 성폭행 당했습니다. 12월 12일 밤이었죠. 민주주의란 처녀성을 유린한 반란의 주역들은 그날 밤 샴페인을 터뜨리며 파티를 즐겼습니다.
그해 겨울, 기억하기도 싫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아프지만 우린 역사의 한 페이지이기로 묻어버리기로 했습니다. 45년 전 ‘서울의 봄’이 올해 영화로 만들어져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난 보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보면 피가 끓어 올라 심장이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난 대학교 2학년이었고, 5.18까지 눈뜨고 봐야 했습니다. 맨손에 든 화염병으로 버텨봤지만,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올겨울도 길어질 듯합니다. 다만, 봄이 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잊지 못할 겁니다. 45년 전 악몽을 떠올리게 12월의 그날을. 미친 악령이 되살아 난 것 같아 너무 씁쓸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살림살이가 팍팍한 겨울입니다. 그놈의 권력이 뭔데 선량한 서민들을 다시 광장으로 몰아내는지 모르겠습니다. 국민의 삶을 따뜻하게 해 주어야 할 우리의 정치시스템이 유통기한이 다 되었나 하는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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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기억하기도 싫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아도 2024년 12월은 그렇게 기억될 겁니다. 다시 찾았던 ‘서울의 봄’이 ‘서울의 겨울’로 되돌아간 것 같아 너무 서글픕니다. 우리가 어떻게 ‘서울의 봄’을 찾아왔는데 그걸 하루아침에 무너뜨리려 합니까? 대한민국은 주인은 국민입니다.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지내라고 우릴 다시 광장으로 불러내는 겁니까? 권력에만 눈먼 정치꾼들이 혐오스럽습니다.
광장에서 보내야 할 올겨울이 빨리 지나갔으면 합니다. 이 겨울이 지나가면 파렴치하고 몰염치한 정치꾼들도 국민의 시야에서 영원히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낭만적이고 따뜻해야 할 이 겨울이 너무 춥습니다. 1979년 12월도 그랬습니다. 그해 겨울도 거리는 한산했고 스산해 너무 싫었습니다. 올겨울도 그럴 것 같아 걱정됩니다. 낭만이 없을지라도 성탄절과 연말 분위기가 살아나 자영업자들의 시름을 덜어주었으면 합니다.
이런저런 연말 송년 모임이 취소되는 분위기입니다. 아무래도 시국이 어수선하니 눈치가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을 겁니다. 나도 그런 마음이 드는데, 다른 사람인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몇몇 친구에게 전화해 한잔하려 합니다. 다만, 정치 얘기는 하지 않으렵니다. 해 봤자 스트레스만 받을 것 같습니다. 어떡하면 다가오는 2025년을 멋지게 보낼까, 하는 이야기만 해 볼까 합니다. 그래야 겨울이 빨리 지나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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