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
추위를 견뎌내고 꽃을 피우며,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정신의 표상인 매화의 고고함을 조선시대 문인 신흠이 표현한 말입니다. 퇴계 이황도 매화 사랑이 각별했습니다. 그는 ‘참으로 매화를 아는 사람(眞知梅者)’이라고 자기를 소개할 정도였으며, 임종 때 매화분에 물을 주라는 유명한 일화까지 남겼다고 합니다.
올해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는? 지리산 자락에 있는 화엄사입니다. 홍매화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찍은 사진 대가(大家)들의 홍매화 사진을 볼 때마다 ‘심쿵’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핑계이긴 하지만, 화엄사까지 가려면 적어도 집에서 새벽 3시에는 일어나 출발해야만 하거든요.
정말 큰마음먹고 다녀왔습니다. 그날 새벽, 짙은 안개 때문에 운전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어쨌든 화엄사에 가 사진을 찍었습니다. ‘심쿵’ 했죠. 300년이나 되었다는 홍매화를 찍고 너무 행복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틈만 나면 컴퓨터 앞에 앉아 홍매화에 푹 빠져 지냈습니다. 보고 또 봐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해할 수 없는 대목입니다. 화엄사가 유명한 사찰인데, 절에는 관심이 없고 홍매화에만 꽂혀있었으니. 사진을 취미로 하다 보니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 있긴 합니다. 매화가 너무 유명한 탓입니다. 사실 사진 아니었으면 가지 않았을 겁니다. 절에 홍매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해 놓은 안내판이 있습니다.
「조선 숙종 때 계파(桂坡) 선사께서 장육전에 있던 자리에 각황전을 중건하고 기념하기 위해 홍매화를 심었다. 홍매화의 붉은 꽃 빛은 시주할 돈이 없어 애태우며 간절한 마음으로 헌신 공양한 노파의 마음이런가. 환생한 공주의 마음이런가. 언제나 위태로운 왕자를 보며 애태운 *숙빈 최씨의 마음이런가.」
위의 글에서 보면 짐작이 갈 겁니다. 위태로운 왕자가 누구인지. 한 아들의 엄마로서 모정이 짙게 묻어나는 느낌입니다. 역사 속에 깃들어 있는 이야기를 음미하면 더더욱 홍매화의 아름다움이 더 짙게 가슴에 다가옵니다.
*숙빈 최 씨 : 조선 숙종의 후궁이자 영조의 어머니이다. 한미한(가난하고 지체가 변변하지 못함.) 집안에서 태어나 왕(숙종)의 후궁이 되고, 훗날 왕의 어머니가 되는 일명 조선판 신데렐라다. 궁중에서 무수리(궁중에서 잡일을 맡아보는 여자 종)였다가 숙종의 눈에 띄어 승은을 입고 후궁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인물이니 신데렐라라 할 만한 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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