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로그아웃할 때가 왔습니다. 접속한 지 일 년이 지났으니까요. 사실 당신을 접속하면서 특별한 설렘은 없었습니다. 습관적인 로그인이었죠. 클릭해 들어가 보니 별반 다르지 않았거든요. 해마다 그랬으니까요. 제야의 종소리가 울릴 때 환호성을 지르며 로그인할 땐 축복했죠. 아마 그것도 내 마음보다 분위기에 휩쓸려 그랬을 겁니다.
12월이면 습관적인 것처럼 이어지는 술자리가 이어지죠. 어쩌면 당신과의 이별 파티를 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핑계일 겁니다. 12월은 늘 분위기가 비슷했거든요. 그런데 올해는 좀 다른 듯합니다. 뜬금없는 계엄령과 탄핵드라마가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 듯 탓일 겁니다. 정말 백성 노릇하기 힘든 세상입니다.
우울합니다. 당신과 접속을 끊어도 한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게 분명하거든요. 매년 이맘때 로그아웃할 때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차분하게 마음을 정리했죠. 당신과 함께 보내야 할 것들을 하나둘 챙겼거든요. 그래서 ‘잊어야 할 것들’이란 폴더를 만들어 하나씩 저장해 관리를 했었죠. 매년 12월이면 해야 할 일이었거든요.
폴더 안에 정리한 건 별거 없습니다. 첫 번째 할 일은 좋지 않았던 기억이나 속상한 것들입니다. 그걸 정리하지 않으면 시도 때도 없이 생각나 마음이 괴롭거든요, 잊으려 해도 불쑥 튀어나오는 감정들이 나를 흔듭니다. 미움과 원망이 아물어가는 상처를 건들어 아프게 하니까 그게 너무 싫습니다.
다 정리하고 나면 또 폴더 하나를 만듭니다. 이번엔 ‘하고 싶은 것들’이란 폴더입니다. 가급적 희망과 꿈에 부푼 것들입니다. 새해엔 꼭 이루고 싶은 것들이죠. 작년에 계획했던 것 중에 이루지 못한 것을 계속 이어가는 것들도 있습니다. 내 경우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폴더에 먼저 담고, 내 것을 챙깁니다.
12월 31일, 로그아웃해야 하는 마지막 날입니다. 올 한 해 감사했고, 2024년도 어김없이 다사다난했습니다. 이제 2024년에서 빠져나올 시간입니다. 이런저런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칩니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2개의 폴더를 정리하고 나면 나도 모르게 한 번 올 한 해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세월 참 빠릅니다.
그러고 나면 나는 또다시 로그인해야 하는 운명의 시간을 기다립니다. 늘 그랬듯이 우리는 그 시간을 ‘새해’라고 합니다. 로그아웃과 동시에 로그인되는 게 시간의 법칙이고 우리는 그 법칙에 순응해 왔습니다. 그러니 당신과 로그아웃하는 건 시간의 법칙에 따라 불가피한 이별입니다. 당신도 잘 알 겁니다. 이젠 영원히 헤어져야 한다는 걸.
사실, 로그아웃은 일 년 내내 이어져 왔습니다. 일상은 늘 로그인과 로그아웃이니까요. 그런데 세월이란 매듭은 해와 달이 중심이 된 시간이고, 그 안에 인간이 종속되어 있기에 성찰의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다운 삶을 살다가는게 보편적인 소망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12월은 중요합니다. 나는 지금 2024년을 로그아웃하고 있습니다.
※ 이번 제주항공사고 피해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씀과 애도를 표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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