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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본 별은 아름다웠습니다. 신비로움이 가득했죠. 상상력은 내게 꿈을 자극했고, 나는 밤마다 어린 왕자가 되어 소행성 B612를 넘나들었습니다. 그때 별은 과학이 아니라 동화 속에 머물렀습니다. 순수했던 내 영혼과 밤하늘의 별은 꿈속을 누비는 주인공이었습니다.
하지만, 별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의 존재인 걸 알게 되면서 별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환상이였습니다. 어른이 되어 순수함이 지워지기 탓일 겁니다. 과학은 논리와 이성(理性)을 깨닫게 해 주었고, 나는 그때부터 별을 과학속에 우주라는 이름으로 만나야 했습니다. 그 이후 가슴속에서 있던 별들이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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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하게 잊고 있었죠. 별들을. 그때 덩달아 계수나무 아래에서 방아 찧던 옥토끼까지 하얀 쪽배를 타고 은하수 건너편으로 가버렸습니다. 대신 이태백이 놀던 달이 슬그머니 그 자리를 차지해 버렸죠. 문학이 뭔지, 낭만이 뭔지도 모르면서 얄팍하기 짝이 없는 지식 몇 줄로 친구들과 어울리며 청춘을 보냈습니다.
어쩌다 저녁 무렵 서쪽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았습니다. 그 별이 뭔지 몰랐죠. 나중에 알았습니다. 샛별이란 이름의 금성이었습니다.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개밥바리기' 사연. 배고픈 개가 저녁밥을 달라고 짖을 무렵, 서쪽 하늘에 뜨는 별이라서 붙인 이름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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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번뜩이는 조상들의 언어 감각에 감탄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홀연 어린 시절이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초저녁이면 개 짖는 소리가 시끄러웠죠. 빈 개밥그릇을 핥으며 밥을 달라 꼬리 치던 우리 집 바둑이. 녀석의 밥그릇이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혀로 얼마나 핥았으면 그렇게 되었을까.
바라기는 우리말로 음식을 담는 사기그릇을 뜻합니다. 그러니 개밥바라기는 개 밥그릇입니다. 해가 지고 서쪽 하늘이 어둑해 질 무렵 유난히 빛나는 별입니다. 샛별(금성)의 또 다른 이름이 개밥바라기인 이유가 여기서 생겼다고 합니다.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이니 개도 배가 고팠겠죠. 반려견? 그땐 없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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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 마지막 날, 해넘이 사진을 찍으러 나왔습니다. 요즘 분위기가 그래서인지 날씨마저 쌀쌀합니다. 사진 촬영이 만만치 않습니다. 손이 너무 시리거든요. 해가 넘어간 후 구름 한 점 없는 초저녁 하늘을 보았습니다. 무척 맑더군요. 때마침 홀로 외로이 떠 있는 별 하나가 보였습니다. 맞습니다. 샛별(금성)입니다. 녀석을 한참 보았습니다. 그때 그 별이었습니다.
바둑이를 하늘로 보냈지 60년이 훌쩍 넘었는데, 별은 그때 그 자리에 그대로 있네요. 그땐 저 별이 왜 개밥바라기였는지 몰랐습니다. 어른이 되고나서 알았죠. 그러고 보니 세월이 많이 흘렀네요. 초롱초롱했던 바둑이 눈망울처럼 오늘도 샛별은 반짝입니다. 샛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노라니 바둑이가 짖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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