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겨울아, 너 이상해.

by 훈 작가 2024. 12. 25.

참 살다 보니 별일 다 있습니다. 겨울인데 눈과 단풍이 어우러진 풍경을 봅니다. 예전에 볼 수 없었던 풍경입니다. 언뜻 보면 가을과 겨울이 공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절기상 입동(11월 7일)이 지났으니 겨울입니다. 태어나 이런 장면은 처음 봅니다. 반겨야 할 일인지, 아니면 걱정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빨간 단풍잎만 보면 가을인 것도 같고, 눈이 내렸으니 겨울이라 하지 않을 수도 없고, 아이들이 지금 가을이야 겨울이야 하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난처할 듯싶습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습니다. 겨울은 겨울 같아야 하는데 가을 같은 풍경이 겨울 속에 남아 있으니 그런 겁니다.
 
가을과 겨울의 경계는 분명합니다. 절기상으로 입동이 지나면 겨울입니다. 하지만 단풍이 지각하는 바람에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젠 계절마저 헷갈리는 모양입니다. 마치 지각한 만큼 가을이 머무르겠다고 버티는 모양새입니다. 이에 발끈한 겨울은 무슨 소리냐며 반발하듯 눈을 퍼부은 것 같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듯.

이상한 겨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을과 겨울이 공존하고 있는 게 아니라 서로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고집을 피우는 것 같습니다.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모순된 상황처럼 보입니다. 자연의 질서 속의 사계절은 때가 되면 물러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계절이 들어서기 마련입니다. 여태껏 이를 어긴 적이 없었습니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나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참 이상한 겨울이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잠시 생각해 봅니다. 자연도 순리를 거스를 수가 있을까, 그건 아닐 거야. 있을 수가 없는 일이야. 그럼에도 올해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이상 기후 현상을 보면 아니라고 할 수도 없을 것 같아서 의문이 생깁니다.
 
내 생각이 이상한 건지, 아니면 정말 이상한 겨울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기후변화에 따른 부메랑 같은 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정상적인 현상은 아닙니다. 분명합니다. 겨울은 가을과 같이 있는 걸 원치 않을 겁니다. 겨울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수 있으니까요. 말 그대로 이상한 겨울이 되거든요.

누군가로부터 ‘너 좀 이상해’하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대뜸 ‘뭐가?’ 하고 대꾸할 겁니다. 뭔가 잘못된 것을 뜻하니까요. 누구든 그런 말을 들으면 즉시 확인하고 바로 잡을 겁니다. 이상한 사람이 되기도 싫고,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싫은 겁니다. 어딘가에 문제가 있으니 그런 소릴 듣는 거거든요.
 
이상한 겨울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이상해 보이는 건 확실합니다. 문제는 이상하다고 물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겨울아, 너 이상해?’라고 말해 주면, 겨울이 알아듣고 바로 잡으면 좋을 텐데 그게 가능하지 않습니다. 내가 겨울을 이상하게 보고 생각하는 게 기우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겨울은 겨울다워야 합니다.
 
비슷한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온 걸 봤습니다. 많은 사람이 ‘가을과 겨울의 공존’이라 표현했더군요.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표현의 자유이긴 하지만, 절대 공존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봄과 여름이 공존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상한 봄이고, 이상한 여름입니다.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어쨌든 겨울이 이상합니다.
 
 
 
 
 
 
 
 

'Photo 에세이 > 감성 한 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 나그네  (30) 2025.01.07
개밥바라기  (70) 2025.01.02
1년 뒤 기대하는 내 모습은?  (102) 2024.12.09
첫눈에 반한 날  (88) 2024.11.28
가을 숲의 소리  (17) 2024.11.2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