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한 번쯤 경험했을 겁니다. 첫눈에 반했던 일이. 오늘이 그랬습니다. 유혹에 이끌려 그런 게 아닙니다. 그냥 빠져든 겁니다. 색의 유혹이었습니다. 누구든 꽂히는 대상이 눈을 홀리면 눈은 멀게 됩니다. 첫눈(雪)의 아름다움은 그만큼 강렬했습니다. 내 마음을 정신없이 흔들어 놓았죠. 이성의 영역이 아니었거든요.
감성의 영역을 흔든 건 첫눈입니다. 요즘 말로 '대박'이었습니다. 함박눈이었죠. 하지만 첫눈 자체에 반한 게 아닙니다. 첫눈과 눈이 맞은 첫사랑의 상대 때문입니다. 끼가 있었던 그녀가 떠나지 않고 꼬리 친 게 문제였습니다. 첫눈이 그녀의 짙은 색조 화장 빛을 보더니 한눈에 뿅 간 겁니다.
로맨틱한 드라마의 주인공은 늦바람 난 단풍과 첫눈 사이에 뜨겁게 포옹하는 장면이 나를 첫눈에 반하게 했습니다. 부랴부랴 카메라를 찾았습니다. 이들의 벌이는 애정 행각 현장(?)을 사진에 담아야 했거든요. 그런데 너무 흥분한 나머지 카메라 가방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급한 나머지 스마트폰을 들었죠.
정신없이 찍었습니다. 내가 첫눈에 반한 뜨거운 키스신을. 격정적이더군요. 얼마나 황홀했는지 첫눈은 그냥 눈도 못 뜨고 색에 녹아버리더군요. 한껏 달아오른 둘만의 로맨스는 영화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요염한 단풍의 눈빛에 첫눈은 그냥 무너지고 말았던 겁니다. 그냥 형체도 없이 사라져 녹아버렸거든요.
첫눈이 쉽게 무너진 이유는 순수한 영혼을 가졌기 때문일 겁니다. 지각한 단풍이 좀 더 머무르려고 강짜를 부리는 바람에 첫눈은 마음이 약해 무너진 모양입니다. 기세등등해진 단풍은 마음껏 매력을 발산하며 첫눈을 농락했습니다. 우리 동네 첫눈은 떠나지 않은 지각 단풍의 색에 녹아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첫눈에 반한 것도 처음이지만, 첫눈과 지각 단풍의 로맨틱한 만남에 반한 것도 처음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처음’이란 말에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마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이 있다면 마음이 설렜을 겁니다. 그 사람이 첫사랑일지도 모르니까요.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게 부러울 따름입니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하는데 1초가 걸리고, 호감을 갖기까지 1시간밖에 안 걸린다고 합니다. 사랑하기까지 얼마나 걸리냐면 단 하루밖에 안 걸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누군가를 잊는 데는 평생이 걸린다고 합니다. 오늘 난 1초도 안 걸렸습니다. 첫눈(雪)에 반하는데. 단풍의 고혹적인 색과 첫눈이 너무 잘 어울려 첫눈(目)에 반한 겁니다.
난생처음 첫눈(雪)에 반했습니다. 첫눈(雪) 말고, 첫눈(目)에 반한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난 기억나질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나도 첫눈(目)에 반했을지도 모르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첫눈 오는 날이 행복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잊는 데 평생 걸리는 사람으로는 남고 싶지 않습니다. 누구나 그렇게 살고 싶을 겁니다. 첫눈(雪)에 반한 오늘이 평생 잊혀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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