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가 들립니다. 가을 숲 속으로 들어가면. 숲속 깊은 곳에서 새소리가 들립니다. 그들만의 언어로 주고받는 대화일 겁니다. 우리는 그 소리를 새들의 노래라 하기도 하고, 때론 울음으로 듣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을 숲에서 들리는 새들의 소리는 울음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면 슬프게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리가 들립니다. 바람 소리입니다. 잔잔하게 스치는 숲 속의 바람은 귀로 듣는 청각보다 살결를 어루만져 주고 지나가는 촉감으로 먼저 느낍니다. 소리는 귀와 연결되는 자연의 음이지만 그보다 먼저 피부에 닿는 느낌으로 먼저 숲의 바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귀에 들리지 않는 숲의 소리라고 보아야 할 겁니다.
소리가 들립니다. 물소리입니다. 숲과 바위 사이에서 샘솟는 작은 물줄기가 숨죽이는 것 같더니 이내 계곡으로 내달리면서 청아한 숲의 소리를 만들어 냅니다. 장엄한 교향곡이 아니라 현악 3중주 같은 맑고 고운 음을 오선지에 담아 연주하는 것처럼 아름답게 들립니다. 숲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소리의 앙상블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리가 들립니다. 숲속에 자리 잡은 산사(山寺)의 풍경소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풍경(風磬)은 절 처마 끝에 매달아 놓은 물고기 모양의 작은 종입니다. 종인지라 바람이 불지 않으면 소리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숲의 바람과 만나면 그윽한 소리가 너무 맑아 마음에 쌓은 온갖 번뇌를 깨닫게 해주는 느낌을 줍니다.
소리가 들립니다. 숲이 겨울 맞을 준비를 하는 소리이지만, 한편으론 헤어질 결심을 하면서 이별의 준비를 서두르는 소리입니다. 이 소리는 잘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숲은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 마지막 치장을 하느라 바쁩니다. 화려한 색조 화장이 눈부신 가을을 만듭니다.
단풍이 물드는 건 숲이 이별을 위해 치장하는 소리나 다름없습니다. 다만 우리 눈에는 보이기만 할 뿐 소리가 들리지 않을 뿐입니다. 자연의 소리이기에 인간의 청각으로는 한계가 있는 겁니다. 그게 어떻게 소리냐고,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한다면, 과학적 현상으로만 생각하려는 이성적인 관점 때문입니다.
소리 없는 이별의 전조가 단풍이 물드는 숲의 소리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옷을 갈아 입고 마지막 단장을 하는 가을 잎의 소리는 눈물겨울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초록의 청춘이 어느새 황혼의 모습으로 바뀌면서 이제 마지막 이별의 무대에 오르려고 합니다. 숲에 와 보니 가을 잎이 너도나도 이별의 소리를 모아 아름다운 색으로 만드는 듯 보입니다.
조금 있으면 그들의 마지막 소리가 들릴 겁니다. 낙엽이 되어 처연하게 떠나는 소리가. 하지만 마지막 이별의 순간만은 아름다워야 하기에 슬픔을 내색하지 않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단풍이 물드는 소리는 우리가 들을 수 없습니다. 소리는 있는데 듣지 못하는 겁니다. 단풍을 보면서 그 소리를 나는 듣고 있습니다.
숲에는 소리가 많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아름다운 음악입니다. 하지만, 이별을 위한 그 소리를 가슴에 안아 간직하렵니다. 가만히 안고 있으면 더 눈물겹도록 감동적입니다. 찬바람 맞으며 긴긴밤 눈물을 감추고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 얼마나 준비했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까지 아려옵니다. 그 열정에 갈채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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