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어느 날 사랑이 다가와 인연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뜨거움이 넘치던 태양의 계절이었죠. 달콤한 입술로 속삭이며 서로 사랑의 향기를 싹 틔우며 행복을 꿈꾸었습니다. 세상 모든 게 아름답고 기쁨과 환희가 넘쳐났습니다. 만날 때마다 헤어짐이 싫었습니다. 우린 그렇게 행복한 순간을 하나하나 추억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땐 몰랐습니다. 가을이 이별의 계절이란 걸. 단지 그땐 사랑의 보금자리만 꿈꾸며 희망을 현실로 바꾸려 노력하며 보냈습니다. 알콩달콩 웃음꽃을 피우며 서로 마음을 열고 사랑도 키워나갔습니다. 여름이 초대한 축제 무대에서 우린 미완의 사랑을 낭만이라 여기고 춤추며 즐거워했습니다. 그것도 계절이 만든 풍요속에서.
낙엽이 떠나가던 날, 이별이 배달되었습니다.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었죠. 믿을 수가 없었어요. 이게 현실이란 걸. 그때 알았습니다. 여름이 우릴 버리고 떠났다는 사실을. 그 자리에 가을이 서 있었어요. 가을이 그러더군요. 이제 이별의 시간이라고. 믿어지지 않았죠. 그런데 푸르던 잎이 화장을 지우며 하나둘 떠날 준비를 하더군요.
이별의 서막이었죠. 뜨거웠던 여름날의 축제가 끝났던 겁니다. 청춘을 잃은 가을 잎은 애써 눈물을 감추며 슬픔을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운명의 시간처럼 받아들이는 표정이었습니다. 알았던 거죠. 가을과 이별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렇게 인연을 맺어왔으니까요. 가을이 그러더군요. 원래 이별과 만남은 하나고. 다시 또 만나기 위한 과정일 뿐이라고.
가을이 슬픈 계절인 것은 이별 때문일 겁니다. 그렇게 푸르던 청춘을 고집하던 나무들도 하루가 다르게 이별을 서두릅니다. 수행자의 길을 걷기로 한 듯 외면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냉정하게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별이 아픈 걸 많이 경험해 본 탓일 겁니다. 그러니 오히려 가을이 짧았으면 할지도 모릅니다. 슬픔이 오래 머무르면 싫기 때문입니다.
이별, 같이 있을 땐 모릅니다. 그런데 유독 가을이면 이별이란 단어가 속삭입니다. 애틋함과 시려오는 아픔이 가슴을 저리게 하죠. 그래서일까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라고 애절하게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눈물을 감추려고 먼 하늘을 쳐다보곤 합니다. 하지만 가을에 떠나는 이별은 오래도록 추억으로 기억될 겁니다.
안개가 옅게 깔린 이른 아침 고즈넉한 들녘에 나왔습니다. 이별 무대 끝자락에 서 있는 나무, 다 떠나보내고 가지만 앙상합니다. 그때 어디선가 한 쌍의 새가 날아왔습니다. 다정해 보였습니다. 나무 주위를 맴돌며 사랑의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건지, 아니면 사랑의 밀회를 즐기는 건지 모르지만 연인처럼 보였습니다.
어느 순간 한 녀석이 뒤돌아보지 않고 멀리 날아갔습니다. 남아 있는 녀석이 뒤따라 쫓아갈 줄 알았는데 나무 주위만 맴돕니다. 사라진 녀석이 마음이 변한 건지, 기분이 상해 토라진 건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남아 있는 녀석이 이별을 통보받았을지도 모릅니다. 녀석들이 정말 헤어진 건가? 갑작스런 이별이 많이아픈데.
준비된 이별은 아픔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예고 없이 온 이별은 아픕니다. 우리가 가을에 만나는 이별은 준비된 이별입니다. 새로운 만남을 위한 이별이기에 아프지 않습니다. 아쉽고 짧지만 슬프거나 아프지 않습니다. 자연의 이별은 늘 그래왔습니다.
속세의 이별은 다릅니다. 아름다운 이별이 드물죠. 상처와 후유증이 남는 이별이기 많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차이점을 극복하지 못할 때 헤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서로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이별 가능성은 낮아집니다. 사랑한다면 가을의 이별을 배우기 바랍니다. 그래야 아픈 만큼 성숙한 삶을 살게 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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