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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벗어야 아름답다

by 훈 작가 2024. 11. 19.

‘벗어야 아름답다.’
 
어떤 상상이 머릿속에 떠오릅니까?  19금을 연상케하는 자극적이고, 원색적인 상상이 떠오른다면 빗나간 겁니다. 그만큼 벗는다는 표현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외설적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벗는건 일상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생활의 기본은 입는 건데, 벗어야 아름답다니 뜬금없이 들릴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벗는다'는 표현이 신체와 관련된 것에서 벗어나면 다릅니다. 가을은 벗는 계절이거든요. 지금 한창이죠. 숲을 이루는 나무들은 벗을 준비를 하거나 이미 벗어버린 것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나목(裸木)이죠. 풍성했던 걸 모두 벗어버리면 초라해 보여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벗는다는 건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언젠가 벗는다는 표현을 아름다운 글로 써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언제일까 막연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오늘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일출 사진 촬영을 위해 산에 오르기 때문입니다. 벗는다는 표현과 일출 사진이 무슨 관계가 있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논리적으론 연관성이 전혀 없으니까요.

또, 혹자는 굳이 왜 산에 올라가 뜨는 해를 보느냐고 할지도 모릅니다. 어디서든 볼 수 있는데. 맞습니다. 그런데 맛이 다르고 느낌이 다릅니다. 과장하면 천상(天上)에서 맞이하는 일출입니다. 온갖 찌든 속세의 고통을 벗어나 하늘과 가까운 곳에서, 자연이 연출하는 산 정상에서 나 홀로 맞이하는 오늘이기에 다릅니다.
 
나는 산 위에 서있습니다. 산 아래 새벽을 달리는 고속도로가 하얀 안개에 덮여 있습니다. 질주하는 차량의 불빛이 길게 줄지어 달립니다. 오늘도 어제와 같이 새벽을 열고 새로운 오늘을 맞이하는 그들만의 일상의 시작입니다. 그 위로 산 능선이 어둠에 묻혀있고, 그 위로 우윳빛 안개가 하늘과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나는 잠시 나를 벗고 기다립니다. 마음에 쌓인 이것저것, 번뇌라는 인간의 고통을 벗고서 말이죠. 늘 나를 감추게 만들었던 가면일 수도 있고, 위선이나 가식일 수도 있을 겁니다. 산이 그걸 나도 모르게 벗게 만듭니다. 어떤 힘이 내게 작용했는지는 모릅니다. 잠시나마 진정한 나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같은 느낌이 듭니다.

속세를 벗어난 기분입니다. 산꼭대기에 있으니까. 발가벗으면 다 똑같은 게 인간입니다.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산 능선 아래 안갯속에 가려진 아침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실루엣 같은 속옷을 입은 채 어둠을 천천히 벗고 있습니다. 실오라기 같은 마지막 안개마저 벗으며 천상으로 떠오릅니다. 그 순간, 황홀함이 느껴지고 그 느낌이 가슴을 파고듭니다. 
 
심장이 뛰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아, 모든 걸 벗으며 떠오르는 찬란한 오늘이 아름답다습니다. 저 안개 아래 묻혀있는 속세에서는 느끼지도 알 수도 없는 감동입니다. 어둠과 빛의 경계인 여명에서 시작되는 동틀 무렵부터 불과 30분 남짓한 이 아름다운 순간은 벗음의 미학입니다. 흥분과 설렘이 얽혀 감동을 선물하는 오늘이란 아름다움입니다.
 
벗어야 아름답습니다. 어둠도, 때 묻은 어제도, 가면도, 위선이나 거짓도. 그런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고자 해도 세상이  벗어던지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니 벗지 못합니다. 벗으면 감추고 있던 게 다 보이니 창피하기도 하고, 두렵기 때문입니다. 벗을 수 있어야 하는데, 왜 인간은 벗으려 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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