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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미학을 말할 때 단풍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신이 이 가을을 만난다고 해도 예외가 아닐 겁니다. 단풍은 거부하기 힘든 자연의 유혹입니다. 그러나 유혹치고는 치명적이지 않고, 뜨겁지도 않습니다. 은근히 취하며 푹 빠지고 싶은 건 탐미적 본능을 자극합니다. 해마다 만나고, 또 만나도 헤어 나오기 싫은 건 어쩔 수 없는 감성입니다.
왜, 단풍이 아름다울까요. 뜨거운 여름을 뜨겁게 보내서 그럴 겁니다. 푸르던 시절 쾌락에 빠져 방탕하게 세월을 허비했다면 지금처럼 빛나는 삶의 시간을 누리지 못했을 겁니다. 더불어 비바람을 견딘 시련의 시간을 이겨냈기 때문입니다. 여름날 거센 폭풍이 치던 어두운 밤에 무릎을 꿇었다면 지금처럼 밝게 웃지 못할 겁니다.
또 있습니다. 세월이 야속하다 탓하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늙어 가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 여기며 희로애락을 받아들인 삶의 결과입니다. 마음의 미소를 잃지 않고 항상 하늘의 태양을 닮고자 노력한 피눈물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주어진 삶에 충실하다 보니 신의 은총에 힘입어 지금의 모습처럼 아름답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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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아름다운 건 이별의 본질을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함입니다. 삶이란 굴레는 늘 만남과 이별의 장입니다. 만남이 행복했던 것처럼 이별도 행복한 시간이어야 합니다. 그게 자연의 법칙이고 자연에서 얻어야 할 행복입니다. 그래서 단풍은 헤어짐이 아픔을 미학으로 승화시켜 자신을 불태우는 겁니다. 이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아름답다는 말은 탐미적인 표현입니다. 가을로 들어가면 누구나 탐미적인 언어를 구사하게 됩니다. 단풍 때문이죠. 자연의 미학이 만들어 내는 단풍을 보며 감성에 빠져들면 자연스럽게 시인이 되고 철학자가 됩니다. 단풍의 아름다움을 사랑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사랑에 빠지게 하는 감성이 단풍에 깃들어 있음을 우린 부정할 수 없습니다.
빛은 어둠을 지배하지 않습니다. 빛은 어둠의 반쪽이고, 어둠은 빛의 반쪽입니다. 서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삶을 만들어 냅니다. 존재하는 건 영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삶의 법칙은 생과 소멸을 반복하며 세상이란 무대에 오릅니다. 우리가 가을의 미학을 이야기할 때 이별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배워야 하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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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시간을 쪼개어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지만 자연은 현재에 머무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만나는 자연은 늘 현재에 머무르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변화가 만든 단풍은 생물학적으로 보면 단순한 생존의 법칙입니다. 다만, 우린 그걸 인간의 언어와 감성으로 해석하는 것뿐입니다. 오로지 인간만이 누리는 자연에 대한 감상입니다.
자연은 많은 삶과 영겁의 시간을 동행했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이 지닌 언어와 별개로 대화를 나누고 소통해 왔죠. 지식과 논리로 무장한 속세의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신의 뜻을 전달했죠. 때론 바람으로 때론 눈보라로 거칠게 말할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인간의 삶과 따뜻하게 동행해 왔습니다. 모든 삶의 진리를 보여주려 노력한 거죠.
신은 이 계절에 풍요로움을 선물해 왔습니다. 생존적 삶 위에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감성적 행복과 즐거움을 준 것이지요. 삶 속에 아름다움이 깃들도록 배려한 겁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인간다운 인간의 삶을 살라는 메시지입니다. 신은 가을이란 계절의 소멸을 통해 우리 자신이 가을 미학의 주인공처럼 아름다운 인생을 살다 가기를 보여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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