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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내가 정말 꽃일까.

by 훈 작가 2025. 1. 8.

나는 꽃이 아닙니다. 그런데 꽃이라 부르니 이상합니다. 피지도, 지지도 않는 날 보고 사람들은 눈꽃이라 합니다. 그게 싫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부담스럽습니다. 꽃으로서 지녀야 할 향기가 없거든요. 그뿐인가요. 식물학적으로 정체성을 증명할 만한 DNA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왜 꽃으로 불리는지 이해힐 수 없습니다.
 
꽃은 아름다움의 상징입니다. 사랑받는 이유죠. 게다가 저마다 형형색색의 화려함과 향기까지 있습니다. 매혹적일 수밖에 없죠. 아름다움과 향이 벌과 나비를 부르고 사람을 찾게 하니까요. 좋은 향기는 멀리까지 날아가기도 한다니 사람들이 꽃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많은 꽃이 저마다 개성과 매력을 갖고 있죠.
 
반면 나는 그렇지 못하죠. 그럼에도 날 꽃이라 예찬하는 사람들이 있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혹자는 자연이 만든 예술 작품이라고 하고, 겨울 정취를 더해주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말하죠. 혹독한 겨울 한파에 나뭇가지에 쌓이거나 얼어붙어 일정한 패턴을 만든 모양을 보고 자연의 미적 감각을 극대화한 모습이라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경우도 있죠.

사람들이 겉치레로 하는 말이라 나는 생각했습니다. 날 꽃이라 부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그럴까? 사실 인간의 마음은 수시로 변하잖아요. 과연 그들이 날 꽃이라 부르는 말이 진심일까? 자연이 만든 예술 작품이라 띄우는 이유가 무얼까? 정말 내가 꽃일까?
 
사실, 사람들에게 난 겨울에만 오는 손님입니다. 그런데 헷갈리는 거 있죠. 손님 대접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불청객으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거든요. 몇몇 사람은 낭만적인 겨울을 즐기려고 날 기다리죠. 하지만 불안과 우려의 눈초리로 날 보는 사람도 많습니다. 특히, 내가 꽃으로 불리는 추운 날은 난리법석인 걸 수없이 봤거든요.
 
그래서 날 꽃이라 부르는 게 진심인지 헷갈립니다. 여러 날 생각해 봤습니다. 결국 꽃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겨울이면 거의 모든 꽃이 져 볼 수 없더군요. 세상에 있던 꽃들이 사라지니 눈에 보이는 풍경이 삭막하고 추해 보였던 모양입니다. 그게 싫었던 것 같습니다. 눈이라도 내려야 추한 모습을 덮어 버리니까요.

그런데 눈이 오더라도 금방 녹거나 쌓이지 않으면 추한 게 그대로 보이니 꽃을 대신할 만한 대상이 없었던 겁니다. 날씨가 추워야 그나마 내가 나뭇가지에 꼭 달라붙어 있으니 감성적으로 위안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꽃이 아닌 날 눈꽃이라 불렀던 모양입니다. 모든 꽃을 대신해 내가 아쉬움을 달래주었던 것 같습니다.
 
다행이긴 합니다. 보잘 것 없는 내가 위안이 된다니. 하지만 추운 겨울이라도 날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순백의 내 모습을 쉽게 볼 수는 없죠. 추운 날 높은 산이나 습도가 높은 강 언저리 숲에나 가야 볼 수 있죠. 겨울이라도 아주 날씨가 춥지 않으면 볼 수 없으니 어쩌다 한 번 날 보면 꽃으로 대접해 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내가 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눈꽃으로 불리며 사람들 곁에 머물러 있는 시간은 행복입니다. 잠시 스치는 인연이지만 눈꽃으로 살다 떠나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 내가 당신의 꽃이었다는 사실이, 당신의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이 감사합니다. 이유야 어쨌든 당신이 불러주는 눈꽃이란 이름을 오래도록 잊지 않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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