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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차일피일 미루는 일이 많습니다. 급하지 않은 일일수록 그렇습니다. 사실 내 경우 급하게 해야 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은퇴 생활이라는 게 구속받을 일이 없거든요. 기껏해야 취미로 즐기는 사진 찍는 일과 그걸 기초로 블로그에 콘텐츠를 올리는 일인데 구속이란 말은 맞지 않죠. 그럼에도 게으른 탓인지 미루는 일이 있습니다.
사진을 찍으러 가는 일입니다. 마음에 둔 곳이 있습니다. 충주시 소태면 양촌리 남한강에 있는 철새도래지 전망대입니다. 겨울철 날씨가 영하로 내려가면 물안개가 피는 아침 일출이 멋진 곳입니다. 사진 애호가들에게 널리 알려진 명소죠. 지난 12월부터 한 번 가서 그림 같은 사진을 찍어야지 몇 번이나 마음먹었죠.
그런데 그게 마음에만 머물렀죠. 이유가 있습니다. 집에서 멀기도 하지만 그보다 물안개가 피지 않으면 허탕이거든요. 그게 싫었던 겁니다. 사진은 발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지런히 다니다 보면 로또에 당첨되는 것처럼 대작을 촬영한다는 말인데 내 경우 잔꾀가 생긴 겁니다. 그래서 일기예보를 보고 확률이 높은 날만 기다린 거죠.
그게 1월 7일이었습니다. 전날 낮 최고 기온이 4~5도였고, 다음 날(7일) 영하 8~9도까지 내려갈 거라는 일기예보에 드디어 때가 왔나 싶었습니다. 일교차가 10도 이상 차이가 나니 물안개가 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출사 준비를 한 후 알람을 새벽 5시 20분에 맞추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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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면을 마치고 새벽 5시 48분에 집에서 출발했습니다. 새벽 출사 길에 나서면 항상 고속도로는 화물차들이 많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평택-제천 간 고속도로 북충주 I/C를 지날 무렵 동쪽 하늘에 여명이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내비게이션 안내에 따라 동충주 I/C를 빠져 나와 599번 도로를 따라 남한강 방향으로 달렸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오전 7시 7분이었습니다. 나와 비슷하게 생각했는지 2명이 와 있더군요.
아! 그런데 이게 뭡니까. 예상이 빗나갔습니다. 물안개가 없네요. 전혀. 잔뜩 부푼 풍선에서 바람이 후-욱 빠져나가듯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 새벽잠을 설치며 달려왔는데…. 새해벽두부터 찬바람을 맞았습니다. 영하 9도 되는 날씨인데 이게 뭐람~. 속으로 투덜거렸습니다. 나보다 먼저 온 두 사람도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한 분은 제천에서, 다른 한 분은 이천에서 온 분이었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몰라, 해가 뜨려면 족히 40분은 지나야 하니까. 포기하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경험상 물안개가 필 확률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아쉬운 나머지 미련이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물안개는 물 건너가고 말았습니다.
아쉬움 속에 찍은 사진입니다. 정말 춥더군요. 손이 얼얼할 정도로. 마음 달랠 방법이 없죠. 그러려니 할 수밖에. 비일비재하거든요. 사회생활 할 땐 세상이 내 마음을 몰라 준다고 쓴 소주잔을 기울였죠. 사실 인생은 내 마음 같지 않은 날이 더 많거든요. 바람은 맞았지만, 덕분에 남한강 일출을 만났습니다. 다음엔 이런 일이 없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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