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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아포리즘

흑과 백

by 훈 작가 2025. 1. 22.

눈 내린 날 도심을 벗어나면 하얗습니다. 텅 비어 있는 공간에 살아남은 색이라고는 검정뿐이죠. 그것도 눈이 더 많이 내렸으면 모두 삼켜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북극이나 남극처럼. 이처럼 눈은 모든 걸 제압해 버리는 건 겨울이기에 가능합니다. 그러나 눈이 모든 사물을 제압하는 게 아닙니다.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게 한 겁니다.
 
수묵화 같은 사진을 보면서 나는 잠시 흑백이 만든 자연의 겨울, 그 절묘한 흑백의 세계에 빠져 사색에 잠겨봅니다. 지난밤 내린 눈은 세상을 바꾸어 놓았죠. 그런데 공간을 다 채우지 않고 여백을 남겨 놓았습니다. 비워 둔 들녘에 서 있는 한 그루의 팽나무와 집 몇 채가 보입니다. 오로지 흑과백 뿐입니다. 단순한 색의 어울림이죠.
 
흑과 백, 자연은 흑과 백으로 서로를 가르는 게 아니라 조화를 이룹니다. 공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자 하는 겁니다. 세상은 어떤가요? 너무 편 가르는 걸 좋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내가 옳다, 네가 옳다. 하루도 빠짐없이 싸움만 하는 것 같아 TV 보기가 싫습니다. 속된 말로 난장판이나 다름이 없죠.
 
흑과 백은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답습니다. 서로 옳고 그름만 따지다 보면 대립과 갈등을 부르죠. 세상이 시끄러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바둑판 위의 흑과 백은 용호상박을 이루며 싸우지만 서로 조화를 이룹니다. 음과 양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서로 다름의 차이입니다. 음과 양은 하나입니다. 적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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