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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까치 설날 아침에

by 훈 작가 2025. 1. 28.

예전 같지 않습니다. 설 명절을 앞둔 풍경을 이르는 말입니다. 어릴 적 흔하게 들렸던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로 시작하는 동요 ‘까치 설날’ 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가 되었나 봅니다. 이맘때면 흔하게 듣던 노래인데…. 왠지 모르게 쓸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기억이 납니다. 동네 목욕탕에 가면 때를 미는 사람들로 북적였죠. 연례행사는 다름없는 일이었으니까요. 특히, 설을 앞둔 동네 목욕탕은 시장 골목처럼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었습니다. 떡방앗간도 마찬가지였죠. 아이들도 어른들과 같이 하루 종일 집 안팎을 청소하느라 놀 틈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설맞이 준비하느라 그랬던 겁니다.
 
이날만큼은 시키는 심부름은 뭐든지 잘해야 했죠. 눈 밖에 나면 설날 세뱃돈을 못 받을지 모르니까요. 엄마, 아버지 눈치를 보며 최대한 착한 어린이가 되려고 했습니다. 속이 뻔히 보이는 행동이었지만. 저녁 무렵 모든 게 끝나면 가족 모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밤새우곤 했습니다. 한 해가 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해지킴’ 풍습이었죠.

하지만 어머니는 쉴 틈이 없었습니다. 설차례상 음식 마련하랴, 설빔 준비하랴 밤새워 이것저것 챙기고 바느질을 해서 모든 준비를 끝내야 했으니까요. 왜냐하면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내기 위해서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할아버지 할머니가 입을 바지저고리, 두루마기, 버선, 대님 등을 챙겨야 했거든요. 어머니는 이 모든 걸 준비하느라 거의 잠을 못 주무셨죠.
 
사립문밖 나무위 까치들도 생각납니다. 우리에게 길조(吉鳥)였습니다. 사람에게 복되고 좋은 일이 있을 것을 미리 알려 주는 새였죠. 특히, 까치밥이라고 해서 늦가을에 감을 수확할 때, 다 따지 않고 까치 따위의 새들이 먹을 수 있도록 감을 남겨 두었습니다. 그 정도로 까치에 대한 사람들의 정서는 따뜻하고 너그러웠죠.
 
이유는 모르겠지만, 까치는 한국인에게 친숙한 새인 건 맞는 것 같습니다. 녀석의 이름을 붙여 설날도 만들어 줄 정도였잖아요. 그런 까치를 누군가는 국조(國鳥)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실제로 국조로 지정된 건 아니라고 합니다. 다만, 국조로 가장 많이 거론되고 있는 건 사실인 모양입니다.

인기가 높기는 했지만, 옛말인 듯합니다. 세상이 달라진 겁니다. 환경부가 유해조류로 지정했거든요. 졸지에 퇴출 대상이 된 겁니다. 농작물 피해 때문이죠. 게다가 전봇대에 까치집을 짓는 바람에 정전 사고까지 일으켜 골치 아픈 모양입니다. 한때는 국조로 거론될 만큼 인기가 좋았던 녀석인데 미운 오리 새끼가 된 겁니다.
 
녀석은 내가 알던 까치가 아니었습니다. 어릴 적 불렀던 동요 ‘까치설날’이 왜 요즘 아이들이 부르지 않을까? 이상하다 생각만 했습니다. 어쩌다 녀석이 배은망덕한 새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미운 짓을 하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녀석에게도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모르겠습니다.
 
한때 까치와 우리는 좋은 사이로 지냈습니다. 많은 사람이 국조로 거론할 정도였고, 어른들이 까치밥을 남겨 줄 정도로 정이 들었던 사이였습니다. 그랬던 까치가 아무런 이유 없이 농작물을 해치는 걸까요. 우리는 남 탓하는 데 익숙합니다. 선수죠. 탓하기 전에 왜 그렇게 되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까치 설날이 있는 만큼 예전처럼 지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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