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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묵언수행

by 훈 작가 2025. 2. 6.

눈이 소리 없이 말했습니다. 너는 봄부터 가을까지 많은 말을 하며 살았으니, 이제 조용히 뒤 돌아보는 게 어떠냐고. 때로는  바람과 때로는 새들과 인연을 맺으며 초록의 꿈을 키우고 행복을 누렸으니 조용히 너만의 시간을 갖고 삶을 성찰해 보라고. 속세의 중생들처럼 이제 신세타령 그만하고 묵언수행 하는 게 어떠냐고.
 
사실 내가 지켜본 세상. 나와 남을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말(言)이 있습니다. 처음엔 마음과 마음이 이어주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영혼 없는 말만 무성하게 허공을 떠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자신의 마음은 열지 않고 남의 마음만 들여다보려는 본성입니다. 아직도 이기심과 탐욕을 숨긴 채 대화하려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나는 눈이 내게 말한 대로 해마다 겨울이면 묵언수행의 시간을 통해 나를 돌아봅니다. 성찰의 시간을 갖는 거죠. 지난봄부터 가을까지 삶을 반성하며 새로운 봄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 늘 그랬듯이 말이죠. 눈은 존재하는 것은 한순간 머물렀다 가는 인연이니 인연에 연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나는 눈과 맺은 인연을 통해 겨울의 가르침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삶을 내려놓을 줄 알게 되었고, 묵언수행 하며 마음을 비워야만 새로운 봄을 통해 다시 채워진다는 자연의 진리를 터득하게 된 겁니다. 난들 마음속에 하고 싶은 말이 없겠습니까. 하지만, 나의 부족함을 알기에 겨울만큼은 나만의 시간을 갖습니다.
 
묵언수행이 내겐 동안거(冬安居)나 마찬가지입니다. 세월이 흘러 나이테가 늘다 보니 말을 하면 할수록 쓸만한 말이 없고 자칫 남에게 상처만 주거나 받게 되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필요했죠. 귀 막고, 눈 감고 입 다물고 이 겨울 지내는 이유입니다. 모든 걸 다 비우고 다 떠나보내니 세상이 보입니다.
 
사진을 찍고 겨울나무를 보고 있습니다. 이파리를 모두 떨군 나무, 빈털터리가 된 것 같아 안쓰러워 보입니다. 하지만 편안해 보였습니다. 초록을 다투던 삶, 뜨거웠던 사랑, 아름다운 시간의 기억들, 이 모든 걸 내려놓은 겨울나무는 아무 말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침묵뿐이죠. 나는 이 침묵이 묵언수행이라 생각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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