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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아포리즘

고요 : calm

by 훈 작가 2025. 4. 16.

바람을 쓸어 담은 호수는 고요를 내보낸다. 몽실몽실 피어나는 물안개, 침묵을 흔들며 날아간다. 그 위로 봄이 내려와 앉는다. 밤에서 깬 호수는 무거운 몸으로 땅을 누른다. 벚나무에 물든 아침 햇살이 꽃잎에 껴 안는다. 숲 속 언저리에서 동박새 한 마리가 기지개를 편다. 초록의 잎에 움트는 소리마저 고요 속에 잠긴 아침이다.
 
봄은 연초록이 점령하는 시간이다. 빛은 마당과 담장을 넘어 잠든 겨울나무를 깨운다. 고요 속에 봄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지나간 사랑은 죽었다. 그러나 사랑이 남긴 희망은 고요 속에 깨어난다. 고요는 아무것도 새어 나게 하지 않도록 문을 걸어 잠근 채 호수에 머문다. 호수의 아침은 고요 속에 봄빛만 가득한 향연이다. 
 
우리는 입으로 고요를 깨트린다. 침묵이 금이란 걸 알면서도 말이다. 참지 못해서 안달이다. 틈만 나면 남을 안주 삼아 수다를 즐기려 한다. 스스로 나 자신을 깨우치지 못한 탓이다. 진리를 깊이 깨우친 사람만이 마음이 고요한 법이다. 그 안에 즐거움이 있고, 행복이 있음을 깨닫기 전까지 우리는 아침 호수의 고요를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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