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이 애타게 할 때가 있습니다. 물빛에 반영된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싶을 때입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벚꽃이 만발한 시냇가 둑길, 바람만 잦아들면 그림 같은 사진을 담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마음 같지 않습니다. 속절없이 애만 탑니다. 이럴 땐 바람이 밉습니다. 미워서 미운 게 아닙니다. 살짝 서운한 겁니다.
엊그제까지 긴가민가했습니다. 봄인지 헷갈리는 날씨였거든요. 게다가 주말마다 반갑지 않은 비까지 내려 더 그랬습니다. 겨울과 헤어진 줄 알았는데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의아하게 만들었으니까요. 예전 같지 않은 행동에 벚꽃도 바람을 미워했을 겁니다. 다행히 몇몇 곳은 그의 손길이 멈추어 다행이었습니다.

오늘에서야 바람이 멈추었습니다. 반가웠습니다. 바람이 멈추면 숨을 쉬지 않습니다. 숨을 쉬지 않으면 죽는데, 혹시 바람도 죽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자취를 감춘데다 보이지 않으니 바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 바람이 멈추어 평소에 볼 수 없었던 보이는 풍경이 시냇가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람과 함께 윤슬이 사라졌습니다. 일렁이던 물결도 숨죽인듯 시냇물이 잔잔해졌습니다. 그러더니 하늘을 와락 끌어안아 한 몸이 됩니다. 그간 너무나 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금세 물빛이 하늘빛이 됩니다. 덩달아 빨려 들어간 벚꽃도 한 몸이 되어 버렸습니다. 좀처럼 보기 어려운 봄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멈추어야 보입니다. 평소에 볼 수 없는 것들이. 먹고 사느라 앞만 보고 뛰다 보면 볼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보고 싶은 것도 놓치기 쉽습니다. 봄이 왔는데도 언제 봄이 왔는지 보지도 느끼지도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후회가 됩니다. 바쁨을 나쁘다 할 순 없지만 가끔은 멈추고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람처럼 지나가는 게 인생입니다. 비로소 멈추어야 보이는 풍경, 지금 멈추지 않으면 이 봄을 볼 수 없습니다. 쉼 없이 바람처럼 앞만 보며 달려 온 당신, 바람처럼 살다 보면 인생의 가을 문턱에 서서 노을빛이 구름을 보게 됩니다. 바람이 멈추어야 볼 수 있는 봄이 있듯이, 우리의 삶도 가끔은 멈추어야 볼 수 있는 풍경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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