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빠졌다. 납작해졌다. 녀석은 날 쭈그러트리고 도망갔다. 몰골이 말이 아니다. 내 모습을 본 아이가 울고 있다.
“바람, 너 어디로 도망간 거야.”
엄마가 바람을 혼낸다.
“얘-끼! 이놈~.”
그리고 아이를 달랜다.
“울지마, 바람이 엄마가 보고 싶어 집으로 갔나 봐.”
뿜어대는 뽀얀 담배 연기. 광기 어린 눈빛 오간다. 게슴츠레한 얼굴, 어두운 조명, 살벌한 분위기, 그리고 탐욕, 눈먼 돈이 춤춘다. 이윽고 하나, 둘 죽는다. 일 순간 허풍이 몰아친다. 죽느냐 사느냐 기싸움 드세다. 한바탕 승부는 도박이다. 패가망신 인생 따로 없다.
젊은 날, 누구나 한 번쯤 울고 웃는다. 나 때문에. 왜 그런지 난 알 수 없다. 날 보고 그들은 홍역처럼 앓다가는 바람이란다. 그럼에도 안달이다. 날 만나지 못해서, 누군가는 날 기다리고, 누군가는 날 찾아 헤맨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내게 빠지면 나오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인연으로 핀 해후, 응어리진 분홍빛 눈망울, 얼마나 참았던 눈물이었나. 얼마나 기다렸던 봄이었나. 어둠에서 자유로, 난 꿈을 피웠다. 설레는 내 가슴에 바람이 분다. 그리움에 젖은 내 마음 빼앗아 간다. 뜨거운 입맞춤에 눈이 어지럽던 꿈속의 사랑. 누구나 빠져나오지 싶지 않았던 청춘이 있었다.
잡히지 않는 봄바람, 스치며 떠나가는 사랑, 다 허망하다. 사랑은 이별을 품고 있었나 보다. 첫 추억 남기고 저만치 떠나는 봄이 밉다. 사랑, 그게 뭔지 모르면서, 난 봄에 빠져 울고 말았다. 꽃에 빠지면 이별을 슬퍼하면 안 된다. 어차피 사랑과 이별은 피고 지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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