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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행복, 그대와 춤을

황홀한 행복

by 훈 작가 2023. 3. 25.

황홀하다는 말을 언제 할 수 있을까. 우선 이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면 매혹당할만한 무언가가 시각적으로 들어와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전적 의미가 눈에 어른어른할 정도로 화려하다는 뜻이니 억지스러운 주장은 아닌 듯싶다. 

황홀이란 표현을 꺼낸 이유는 일출 사진 한 장 때문이다. 정말 무의식 중에 이 단어가 생각났다. 단언컨대 이렇게 멋진 일출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구름바다가 뒤덮은 산 아래는 사람 사는 세상이고, 내가 서 있는 곳은 천상의 세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좀 과장하면 환상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여명의 빛을 뚫고 올라오는 시간, 세상 그 어는 순간보다 아름다운 빛, 그것이 여명이다. 여명은 일출을 맞이하는 의식의 빛이다. 황홀한 빛의 향연은 일출의 서막일 뿐이다. 검은 장막을 거두어 내는 빛은 곧 세상을 눈뜨게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그 찰나의 순간은 대부분 잠에 빠져 있는 시간이다. 과거의 나도 그랬었다. 

편안함에 익숙한 육체는 고통을 싫어한다. 잠의 유혹을 거부하기 싫은 시간, 영혼은 육체를 향해 강요한다. 빨리 일어나라고. 달콤한 유혹을 벗어던지는 일은 쉽지 않다. 영혼은 무거운 몸을 침대 밖으로 밀어낸다. 그렇게 눈 비비고 일어나 달려왔다. 그리고 어둠의 끝머리에서 마주한 긴 기다림을 강태공처럼 구름바다로 내던졌다. 

이제 남은 건 기다림이 낚아 올릴 일출뿐이다. 장엄하다는 그 순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 이런 게 황홀한 것인가! 생각하며 카메라 렌즈 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일출의 순간을 잡았다. 황홀하다는 표현 이외 더 맞는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살아 있음이 행복하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음이 황홀하다. 황홀한 행복은 단잠의 유혹을 거부하고 기다림의 고통을 견디어 낸 결과물이다. 고통 없는 행복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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