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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아포리즘

벚꽃 길을 걷다

by 훈 작가 2023. 3. 31.

예전과 달리 요즘은 걷는 게 싫습니다. 걸어서 10분도 안 되는 백화점도 차를 끌고 가야 할 정도죠.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귀찮거든요. 살 빼는데 걷기보다 좋은 게 없다는 걸 알지만 걷기 싫어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심지어 다이어트한다며 약을 처방해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만큼 걷는 게 일상에서 멀어진 느낌이 든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걷기도 있습니다. 걷기 싫어하는 사람도 걷기를 좋아하는 곳이 있지요. 다름 아닌 벚꽃 길입니다. 봄이면 어딜 가나 벚꽃 명소는 주차 전쟁으로 몸살을 앓지요. 일부러 찾아가거든요. 오로지 벚꽃 구경 삼아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가는 이유는 딱 하나 아닌 가요. 그거 말고 다른건 생각나지 않네요.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닙니다. 봄의 정취를 느끼며 즐길만한 곳이 벚꽃 길 만한 곳이 없잖아요. 4년 만에 거리 두기가 해제되었습니다. 그간 코로나 때문에 억눌려 봄을 만끽하지 못했으니 그 마음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그나마 때를 놓치면 또 일 년을 기다려야 하는데 꽃이 지기 전에 가야지요.


엊그제 봄의 정취를 카메라에 담으려고 모처럼 벚꽃길을 찾았습니다.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길을 배경으로 여기저기 스마트폰으로 인증 샷을 찍는 이들이 많더라고요. 하나같이 행복을 머금고 있는 표정이었습니다. 활짝 핀 벚꽃처럼 사람들 얼굴에도 오랜만에 웃음꽃이 핀 것을 볼 수 있었지요. 

 

그리 알려지지 않은 곳을 찾았습니다. 사진도 찍고 조용히 걷고 싶었거든요. 산만한 분위기보다 사색하기에는  한적한 곳이 좋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걸으며 사람들이 왜 다른 꽃보다 벚꽃을 좋아할까 생각해 봤습니다.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벚꽃처럼 살다 가고 싶은 아닌가 싶습니다. 게다가 수명이 사람과 비슷한 60~80년 정도라 그럴지도 모르지요. 

벚꽃은 짧게 피었다가 지는 꽃이지요. 어쩌면 우리의 인생도 찰나의 순간일 지도 모릅니다. 벚꽃이 지는 순간을 보면 눈부시게 아름답지요. 하얀 눈보라가 날리듯 꽃눈이 되어 생과 이별하죠. 다른 꽃처럼 시들어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거든요. 우리의 인생도 그렇게 살다 가기를 바라는 마음일 겁니다. 끝이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하잖아요. 그렇지 않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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