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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7

‘사랑하면 안 되니’ 를 마치며(9) 당당하게 사랑하라 세상은 변하기 마련입니다. 사랑도 그런가 봅니다. 언제나 뜨거울 것 같았던 사랑도 이런저런 이유로 변합니다. 이유야 어떻든 사랑의 변심은 이별과 상처를 만듭니다. 그런 사람 가운데 이혼의 아픔을 안고 사는 사람을 빗대어 ‘돌싱’이란 신조어가 언제부터인가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의미를 몰라 생소하게 들렸습니다. 이혼은 숨기고 싶은 단어입니다. 흉이면 흉이지, 자랑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아픈 단어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프로그램이 버젓이 TV 전파를 타고 안방에 들어옵니다. 이른바 ‘돌싱’ 프로그램입니다. 어쩌면 시대가 변한 사회적 현상의 반영이 아닌 가싶습니다. 세상이 그만큼 달라졌단 뜻이라 생각합니다. 사랑이란 종착역이 결혼이면, 결혼은 사랑의 한 가정의 출발.. 2024. 1. 16.
사랑하면 안 되니(8) 가출 학교 선생님과 상의해 인근 경찰서에 가출 신고를 했다. 같은 반 학생들과 방과 후 학교 주변 피시방부터 갈 만한 곳은 다 찾아봤다. 학교를 중심으로 수현이 컬러사진과 신체적 특징이 인쇄된 전단도 만들어 돌리고, 어릴 때 외할머니 품에서 자라다시피 한 애라 외갓집에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해운대 집에 전화도 해 보았다. 친정엄마는 네 아버지 아시면 화낼 게 분명하니 얼른 전화를 끊으라 했다. 하지만 친정엄마는 어찌 된 일이냐고 다시 큰딸에게 전화했다. 윤민수도 아들을 믿고 기다려 보자고 했다. 그녀는 마음을 일찍 열었어야 했다고 대답했다. 엄마를 닮았으면 절대 나쁜 일은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 위로하자 차은희는 윤민수에게 자신을 버리면 안 된다고 울먹였다. 윤민수가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 말한 .. 2024. 1. 15.
사랑하면 안 되니(7) 뜬 눈으로 밤을 새우다 새벽까지 뒤척이다 잠깐 잔 것 같은데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무거운 몸을 추스르며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설거지하기 전 전기밥솥 스위치부터 누른 후 아들 방문을 살짝 열어 보았다. 이불을 뒤집어쓴 채 자고 있다. 아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다시 문을 닫고 주방에 와 설거지를 한 후 커피포트에 물을 부어 코드를 꽂았다. 부글부글 물 끓는 소리가 적막한 공간을 울려댄다. 원두커피 한 잔을 내려받아 식탁 한쪽 의자에 앉았다. 짙은 커피 향을 차은희의 영혼을 어루만지듯 코로 들어왔다. 지난날 치열하게 살아온 덕에 사회생활은 승자였다. 하지만 사랑만은 아니다. 이번만은 패자로 남고 싶지 않다. 아들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 어떻게 설득해야 오해가 풀릴까. 마음만 답답하다. 그때 수현이가 .. 2024. 1. 14.
사랑하면 안 되니(5) 사랑하면 안 되니 금요일 저녁 퇴근길, 차은희는 윤민수와 아들 문제를 상의해 보고 싶어 만나자고 했다. 코엑스 인근에 있는 G 호텔 커피숍에서 보자고 했더니 그가 알았다고 한다. 그는 언제나 ‘No’라고 대답하는 법이 없다. 데이트 초기엔 혹시 선수가 아닐까 하고 의심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진심에서 나오는 배려였다. 속으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차가 막힐 것 같아 일찍 나왔는데 길이 뻥 뚫려 3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호텔 로비에 들어서니 커피숍 안쪽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맑은 샘물 위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처럼 청아한 피아노 선율이 차은희에게는 힐~링 음악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그랜드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꺼냈다. 바탕 화면에 깔린 아들 사진을 보면 언제나 힘.. 2024. 1. 12.
사랑하면 안 되니(4) 여름방학 6월 어느 날, 윤민수가 프라하 여행을 제안했다. 차은희는 고민스러웠다. 정말 믿어도 될까. 너무 빠른 게 아닌가. 이 남자, 정말 마지막 사랑일까. 생각하며 일단 중3인 아들 때문에 곤란하다고 말했더니 그는 더 이상 여행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같이 여행을 떠가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한동안 말이 없던 윤민수가 프라하 이야기를 꺼낸 건 7월 초였다. 방학 동안 기숙학원에 보내면 갈 수 있다고 설득하자, 차은희는 그런 방법이 있었나 싶었다. 며칠 숙고 끝에 아들에게 기숙학원 얘기를 꺼냈다. 수현이가 안 가면 어떡하지, 걱정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들은 엄마의 뜻에 따르겠다고 했다. 차은희는 그렇게 프라하 여행을 다녀왔다. 꿈같은 시간이었다. 허니 문 여행도 아닌데 전에 .. 2024. 1. 11.
사랑하면 안 되니(3) 소개팅 지난봄, 성당에 다니는 지인 소개로 7살 연상인 윤민수를 만났다. 이탈리아로 유학 간 딸이 하나 있고, 을지로에서 인쇄소를 운영하는 사업가다. 처음에 소극적이던 그가 조금씩 다가왔다. 만나보니 따뜻한 사람 같았다. 남자 혼자 딸 키우며 유학비 보내느라 모든 걸 포기하고 돈만 벌었다는 그가 측은해 보였다. 결혼 전 그의 아내는 이름만 대면 다 아는 H 여행사 가이드로 일했고, 그 덕분에 결혼 후 딸아이 방학 때마다 해외여행을 안 가본 데 없을 정도로 많이 다녔다고 했다, 그런 아내가 딸아이 유학 떠나기 1년 전 췌장암으로 주님 곁으로 떠난 후,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재혼은 딸 때문에 애초부터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도 말했다. 그는 숫기가 없는 남자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친.. 2024. 1. 10.
사랑하면 안 되니(2) 이혼녀 7년 전, 차은희는 자신이 쌓은 사랑의 성벽을 허물어야 했다. 외도하는 남편을 용서할 수도 없었고, 자존심 없는 여자처럼 매달리기도 싫었다.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 같아서였다. 아들 때문에 가정을 지키고 싶었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아픔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지만, 이혼을 결정했다. 사랑에 감정을 소비하는 것은 더 이상 자신의 인생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남편에게 상처받으며 사는 것도 두려웠다. 그날 이후 다시는 남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혼의 대가는 혹독했다. 폐허가 된 성터에 시베리아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밤마다 외로움을 품에 안고 침대에 누웠다. 사랑을 그녀의 성(城) 밖으로 내던진 이후 상처투성인 가슴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운명 같은 .. 2024. 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