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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단편소설

사랑하면 안 되니(2)

by 훈 작가 2024. 1. 9.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이혼녀
 
   7년 전, 차은희는 자신이 쌓은 사랑의 성벽을 허물어야 했다. 외도하는 남편을 용서할 수도 없었고, 자존심 없는 여자처럼 매달리기도 싫었다.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 같아서였다. 아들 때문에 가정을 지키고 싶었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아픔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지만, 이혼을 결정했다. 사랑에 감정을 소비하는 것은 더 이상 자신의 인생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남편에게 상처받으며 사는 것도 두려웠다. 그날 이후 다시는 남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혼의 대가는 혹독했다. 폐허가 된 성터에 시베리아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밤마다 외로움을 품에 안고 침대에 누웠다. 사랑을 그녀의 성(城) 밖으로 내던진 이후 상처투성인 가슴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운명 같은 사랑은 더 이상 내게 없을 거야.’ 하며 차은희는 이를 악물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기로 했다.
  친구들은 안쓰럽게 말했다. “은희야! 더 늦기 전에 다시 시작해 봐.”, "정말 남자 만날 생각 없어?"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야?” 그럴 때마다 “애 딸린 여자를 어떤 남자가 좋아해.” 체념하듯 대답했다. 그러다가 '그래, 맞아. 다시 시작해 볼까?' 하고 생각하는 순간 이혼이 남긴 상처 속에 움츠려있던 트라우마가 뛰쳐나와 허물어진 차은희의 자존심을 사정없이 밟아대며 괴롭혔다. 
  퇴근길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쓸쓸함. 이를 달래려고 간 곳이 여성 전용 바(Bar)였고, 배운 게 ‘혼술’이었다. 그냥 집에 오는 날이면 행여 아들이 볼까, 불빛이 잠든 늦은 밤 몰래 마셨다. 위스키 잔에 얼음을 넣어 양주 한 모금을 넘길 때마다 ‘내 팔자에 남자는 무슨 남자. 그래, 우리 수현이나 잘 키우자.’ 다짐하며 잠을 청했다.
  언젠가 등 떠밀리다시피 소개팅에 나간 적이 있다. 차은희는 예전의 차은희가 아니었다. 그녀는 잔뜩 기죽은 어린아이처럼 뒷걸음쳤다. 그래도 상대남의 따뜻한 배려에 마음을 열어 보려고 용기 내어 몇 번 더 만났다. 그러다 또 당하고 말았다. 아! 이럴 수가. 순간 입에서 ‘개 같은 자식.’하고 욕이 나올 뻔했다. 예전 같았으면 ‘야, 네 마누라가 너 이러는 거 아니?’ 바로 일격을 날리고 벌떡 일어났을 텐데.
   바람둥이 같은 그놈이 차은희의 자존심을 건드리자 전 남편한테 당한 모멸감까지 되살아나 화가 났다. 끓어오르는 분노와 수치심까지 뒤섞여 그녀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저런 놈을 남편이라 믿고 사는 여자가 누군지 불쌍했다. 아마 그 여자도 언젠가 자신과 같은 삶의 행로를 걷지 않을까….
   세상에 차고 넘치는 게 남자인데 하필이면 또 이런 놈일까. 남자 복이 이렇게도 없을까. 평생 돌싱 맘으로 살아야 할 운명인가. 아니야, 아직은 내게 사랑을 소비할 수 있는 유통기한이 남아 있을 거야. 이제 겨우 나이 사십 초반이잖아. 너무 기죽은 듯 움츠리며 살 이유 없어. 그래, 다시 시작해 보는 거야. 운명 같은 마지막 사랑이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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