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단편소설

사랑하면 안 되니(1)

by 훈 작가 2024. 1. 8.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프라하의 밤
 
“아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걱정이에요.”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알게 되면 불륜이라고 난리 칠 것 같아서요.”
“아직은 이해할 만한 나이가 아니잖아요.”
“중3이니 다 알 거예요.”
   차은희가 잔을 비우고 내려놓았다. 흑맥주 맛이 생각보다 좋다. 
“한 잔 더 시킬까요?”
   윤민수가 말했다. 
“좋아요.” 
“Excuse me. One more dark beer, please.”
“흑맥주 맛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어요.”
“사람들은 맥주를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가 독일인 줄 알거든요.”
“그럼, 어디죠?”
“체코예요.”
“아, 그래요.”
“맥주는 크게 라거(Lager)와 에일(Ale) 두 종류가 있어요. 라거는 효모를 8~12도에서 25~30일간 발효시켜 맛이 깔끔하고 청량하죠, 에일은 효모를 사용해 15~20도에서 10~14일간 발효시켜 과일 향이나 꽃 향이 있어 깊은 풍미가 있고, 라거에 비해 알코올 도수가 높아요.”
“어떻게 맥주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아세요.”
“아~아, 그건 아니고요.” 
   윤민수가 말을 해 놓고 보니 아는 척한 것 같아 동유럽 여행 때 가이드에게 들었다며 얼른 수습한 후 맥주 한 모금을 마셨다. 차은희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흑맥주가 다시 나오자 차은희가 건배하자며 잔을 먼저 들었다. 윤민수가 이것만 마시고 카를교 쪽으로 가 야경이나 구경하자고 하자, 차은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Kozlovna Apropos를 나온 두 사람은 카를교 쪽으로 걸었다. 블타바강이 보이면서 건너편 언덕 위 프라하성이 보였다. 유럽의 3대 야경이라는 프라하의 밤은 연인들에게 더없이 로맨틱한 곳이다. 두 사람이 카를교 끝까지 갔다고 다시 돌아오는데 오른쪽 다리 난간에 기대어 키스하는 연인이 눈에 띄었다. 차은희가 못 본척하며 고개를 돌렸다. 윤민수도 그 광경을 봤는지 차은희의 왼손을 살며시 쥐었다. 
   구시가지 쪽으로 향했다. 뒷골목 풍경을 본 윤민수가 을지로 노가리 골목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월급쟁이 시절 퇴근길에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가듯 자주 들렀던 곳이란다. 차은희는 그가 아직도 흑맥주 맛을 잊지 못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구시가지 광장에 이르자 틴 성모 마리아 성당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광장 맞은편 한쪽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천문시계탑 앞쪽이다. 
   잠시 뒤 이유를 알았다. 매시 정각에 시계가 울리는 것을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다. 정각 밤 9시가 되자 시계탑 문이 열리면서 십이 사도 조각이 줄줄이 지나가고 황금 닭이 한 번 울었다. 불과 1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민수 씨! 하벨 시장 쪽으로 가 봐요.”
“거긴 오후 6시 반이면 문 닫아요.”
“마리오네트 하나 사고 싶었는데….”
    윤민수가 공항 면세점에서 하나 사주겠다며 팔짱을 낀 채 화약 탑 쪽으로 이끌었다. 그곳을 지나자 두 사람이 머무르고 있는 호텔 건물이 보였다. 차은희는 여행을 같이 가자고 할 때 망설였다. 그런데 지금은 돌아가기가 싫다. 그녀는 당장 혼인신고라도 하고 싶은데 수현이가 자꾸 눈에 어른거린다. 차은희는 여행 내내 아들이 마음에 걸렸다. 
    윤민수도 차은희의 속마음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아쉽게도 여행 마지막 밤이다. 내일이면 헬싱키를 거쳐 인천으로 돌아간다. 차은희는 이번 여행이 얼어붙은 연애 세포를 녹이는 중이라 생각했다. 윤민수 역시 무디어진 사랑 세포의 불씨를 되살리려 애쓰는 중이다. 두 사람은 각각 유통기한이 다 지난 사랑 다시 꺼내 포장하는 중이다. 

'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 > 단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하면 안 되니(3)  (28) 2024.01.10
사랑하면 안 되니(2)  (38) 2024.01.09
살구(9)  (0) 2023.10.25
살구(8)  (2) 2023.10.24
살구(7)  (4) 2023.10.2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