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뜩 흐린 봄 하늘, 홀연 담장 밖으로 마치 기린처럼 길게 목을 내민 보랏빛 꽃이 보였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나를 흔든 건 향기였다. 향기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두리번거릴 때 눈에 띈 것이 바로 그 꽃이었다. 보랏빛에 시선이 끌린 나는 꽃 이름을 모른 채 일단 사진부터 찍었다. 색감이 너무 내 마음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꽃 이름이 궁금해 혹시 집주인이 있나 싶어 주변을 살펴보았다. 단정한 옷차림의 중년 남성이 보여 대문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사장님, 저 꽃이 무슨 꽃인가요?”
“라일락입니다.”
사실 긴가민가했다. 오래전 북유럽 여행 때 만난 라일락 꽃과 비슷했다. 그런데 그땐 5월이었다. 그래서 라일락이 맞는지 자신이 없었다. 당시에도 거리에 가로수처럼 큰 라일락 나무에 핀 꽃향기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이런 향기 속에 사는 노르웨이 오슬로 사람들이 부러웠다. 보랏빛 자체만으로도 힐~링일 텐데 향기까지 가득한 도심에 사는 게.

T S 엘리엇의 시(詩)‘황무지’가 생각난다. 그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고 했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낸 것이 4월이다. 라일락이 바로 그런 꽃이다. 4월은 잔인해도 자연의 봄은 희망을 키워낸다. 그런 라일락 꽃이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다운인가.
죽은 땅에서 싹을 피우고 꽃을 피워낸 라일락은 봄에 핀다. 고통 없이 피는 꽃이 있을까? 없다. 긴 겨울 속에 봄에 피는 꽃은 모두 시련을 겪고 고통이란 통증을 이겨낸다. 라일락의 향기는 혹독한 고통의 산물이다. 살아 숨 쉰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고통이고, 삶은 모두 고통 속에 피는 고귀한 꽃이다. 그래서 4월을 잔인한 달이 아니라 희망의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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