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수없이 넘어졌다. 나 홀로 자전거를 탈 때까지. 무릎이 까지고 손에 타박상도 입어 피가 날 정도로 넘어지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깟 아픈 것쯤이야 어차피 각오한 터이다. 초등학교 5학년 여름 방학 내내 학교 운동장에서 자전거와 씨름했던 기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주말 공원에서 자전거 타는 걸 배우는 초등학교 어린이를 보았다. 아이 엄마는 뒤에서 중심을 잡아 주느라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는 비틀 거리며 페달을 밟아도 자꾸만 중심을 잡지 못하고 한쪽으로 기울어지며 넘어지려 할 때마다 큰소리로 엄마에게 소리 지른다.
“엄마, 꽉 잡아.”
나는 아이 엄마를 한 참 지켜보았다. 젊은 엄마들은 다 똑같을 것이다. 요즘은 예전과 달리 안전 장비가 다 있다. 헬멧도 있고 장갑이나 무릎 보호대도 있어 착용하고 배우면 많이 다질 염려가 없다. 그렇게 하면 굳이 뒤에서 잡아 주지 않고 스스로 배우도록 하면 될 텐데 엄마들은 그게 안 되는 모양이다.
일단 자전거 타는 걸 배우고 나면 별거 아니다. 이렇게 쉬운 걸 왜 못 타나 싶을 정도로 쉬운 게 자전거 타기다. 그러나 그걸 몸에 익히고 타기까지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넘어지는 걸 감수해야 한다. 그렇게 배운 자전거 타기는 평생을 잃어버리지 않고 탈 수 있다. 어떤 도전이든 공짜로 얻어지는 결과는 없는 게 인생이다.

신기하다. 사람의 몸은 자전거를 타면 본능적으로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하는지 정확하게 기억한다. 영어 공부를 그렇게 오래 배웠음에도 해외여행에 나서면 입이 얼어 버린다. 어떤 때는 간단한 문장조차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 자전거 타기는 그렇지 않다. 몸이 저절로 반응한다.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인간의 몸은 시간이 기록되는 공간이다. 아주 어렸을 때 배운 자전거 타기를 잊지 않고 어른이 되어도 몸이 반응한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배운 영어는 그 기억 속에 남아 잊지 않고 날아간다. 몸으로 배운 기억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머리로 배운 기억은 날개가 달렸는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같은 기록인데 다른 것이다.
같은 배움인데 어떤 건 오래가고 어떤 건 쉽게 사라진다. 아마 그건 몸으로 배우는 것과 머리로 배우는 것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몸으로 기억하는 것은 죽을 때까지 남지만 머리로 배운 것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니 자전거 타기는 스스로 시행착오를 거치며 넘어지면서 배우는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자전거 타기를 배우면서 넘어지는 건 일종의 학습 과정이다. 넘어지지 않고 배우려면 아예 자전거 타기를 안 배우는 게 낫다. 엄마들이 너무 아이를 금이야 옥이야 금쪽이처럼 키우는 게 아닌가 싶다. 요즘 엄마들은 아이들을 너무 온실에 가두어 키우려는 경향이 있다. 아이에 대한 사랑과 과잉보호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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