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hoto 에세이/라떼별곡

노을 진 하늘을 만나면

by 훈 작가 2026. 6. 25.

 

살아 숨 쉬던 하루가 붉게 타고 있다. 타 버린 빛의 조각들이 작은 먼지가 되어 흩어진다. 이내 먼지는 하늘가에 떨어져 물든다. 그렇게 저녁노을 지는 하늘을 만나면 가슴이 멍해진다. 왜 이토록 아름다운 걸까. 한 때 삶에 쫓겨 하루를 보낼 땐 몰랐었다. 아니다. 아예 관심이 없었거나 볼 시간이 없었다. 그땐 실체가 보이지 않는 바쁨이 날 붙잡고 놓아주지 않다.  난 그걸 당연한 삶의 일상이라 여기며 타성에 젖어 살았던 것 같다.
 
은퇴 후 사진과 인연이 되어 동행하던 어느 날 노을 진 하늘을 만났다. 언덕 위에선 모두가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일상과 헤어지는 걸 보았다. 이별을 그렇게 멋지게 하는 사람들이 행복해 보였다. 지는 태양도 오늘 하루 수고 했다며 손을 흔들며 서쪽 지평선 너머로 굿-바이 한다. 그러고 보니 하루의 끝자락은 아름답게 어둠에 묻히는 날이 많다. 아름다운 퇴장이다. 인생이란 삶의 무대는 그렇게 살다 내려와 한다고 하늘은 조용히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같다.
 
반복되는 것 같은 하루하루가 똑같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 자체가 착각인 걸 알면서도. 사고의 영역에서 둔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품학의 유통기한으로 접근하면 달라진다.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다 빠져나가면 끝이다. 어느 날 우리의 삶도 노을 진 하늘을 바라보는 언덕에 서게 된다. 그 순간 과연 내 삶도 붉게 노을 진 저녁 하늘처럼 아름다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황혼이란 단어가 유통기한과 비슷하게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유통기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런데 인생이란 시간으로 옮겨 놓으면 정신이 번쩍 든다. 과연 난 유통기한이 얼마나 남았을까. 가장 심각하게 느낄 때가 현역에서 은퇴 시점을 바로 코앞에 앞두고 있을 때다. 아니 벌써, 내가? 하고 세월의 무상함을 실감한다. 그때 내 황혼 인생도 노을 진 하늘이 아름다워야 하는데 하고 생각할 땐 늦다. 난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미리미리 준비하지 못한 탓이다.
 
유일하게 인간은 후회라는 단어를 만지작 거리며 산다. 가능하면 노을 진 하늘을 바라보며 이 단어를 만나면 안 된다. 은퇴 시점에 이 단어를 만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삶에 허덕이면 노을 진 하늘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그런 소리가 짜증 나게 들린다. 어떤 댄 팔자 좋은 소리 하는 것 같아 듣기 싫다. 노을 진 아름다운 하늘을 만나면 나도 저렇게 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마무리 싶다. 그러려면 바로 지금부터 서둘러 대비해야 한다.
 

'Photo 에세이 > 라떼별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썰렁한 바다 이야기  (12) 2026.06.29
어떤 ‘만남’일까?  (7) 2026.06.26
북두칠성 이야기  (19) 2026.06.18
보리밭과 종달새  (10) 2026.06.12
세렝게티  (10) 2026.06.1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