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로등 불빛 아래 환락의 밤을 보내는 것 같은 무리가 있다. 하루살이다. 녀석들은 애벌레로 1개월 ~ 3년간 물속에서 살다가 애벌레가 성충이 되면 물 밖으로 나온다. 주로 물가에 살면서 밤이면 빛이 있는 곳으로 떼 지어 날아가 춤춘다.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3주까지. 그런데 우리는 하루살이라고 부른다.
하루살이는 우리가 아는 것과 달리 오래 산다. 하루살이라 이름을 붙인 것인 오류다. 하루살이 관점에서 보면 몹시 기분 나쁜 일이다. 자신들의 삶이 얼마나 하찮게 보였으면 우리의 삶을 왜곡하고 폄하한 인간들이 미워할 것만 같다. 인간 너네들이 뭐 그리 대단한 존재라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여름밤 가로등 밑에서 군무를 이루며 춤추고 있는 하루살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할까? 녀석들이 하루만 사는 삶이니 생의 마지막 날을 즐기는 환락의 밤으로 보일 수도 있다. 어차피 내일이 없는 삶이니 오늘 밤 후회 없이 영혼을 불태우는 죽음의 파티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루살이의 삶을 모르고 있을 때 난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땐 마치 환각 파티라도 벌이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은 라스트 댄스를 즐기는 것으로 보는 게 맞을 듯싶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다. 녀석들이 가로등 불빛 아래 모여 춤추듯 날아다니는 것은 수컷과 암컷이 서로 짝을 찾기 위한 행동이다. 녀석들에겐 일생 중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순간이기 때문에 라스트 댄스라 볼 수 있다.

마지막 순간을 짝짓기 한 후 후손에게 생을 이어주고 나면 죽음을 맞이한다. 녀석들은 신이 주어진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순응하며 최선을 다해 순간을 영원처럼 살다 간다. 그렇다고 녀석들이 신을 원망하진 않는다. 어쩌면 하루살이만큼 하루의 가치를 소중하게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생명체도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우리는 하루살이 삶을 통해 겸손할 필요가 있다. 하루살이라고 하찮게 여길 게 아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을 빗대어 왜? 하루살이 인생이라 말하는가. 그건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자세가 아니다. 같은 말이면 그런 말을 하지 말자. 하루살이가 그런 말을 들으면 인간의 존엄을 폄하할지도 모른다.
인생, 짧다. 죽음에 이르는 순간 모든 생명은 하루나 다름없다. 결국 하루살이의 하루나 인간의 삶은 평생의 시간으로 보면 같다. 하루살이라 할지라도 신 앞에선 평등한 생명일 뿐이다. 생명이란 관점에서 고귀하고 덜 고귀한 생명이 없다고 본다. 다만, 그 존엄성을 인간의 관점에선 더 소중하게 여길 뿐이다. 그래도 자연에서 왔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건 똑같다.
환락의 파티로 생각했던 녀석들의 라스트 댄스를 보며 미안한 생각이 든다. 중요한 것은 하루를 살더라도 어떻게 사느냐? 하는 거다. 녀석들이 가로등 불빛 아래서 군무를 이루며 추는 춤은 생의 마지막 파티를 장식하는 라스트 댄스라고 볼 수 있다. 녀석들의 라스트 댄스를 보며 우리가 하루 하루 어떻게 살아야 할지 되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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