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이’란 단어는 생소한 단어다. 처음 들었을 때는 단어의 의미를 몰라 어리둥절했었다. 이야기 내용을 한참 듣고 보니 사진 애호가들에게 널리 알려진 일본 북해도에 있는 출사 명소인 지명(地名)이었다. 그 당시 아무런 관심 없이 지나쳤다. 어느 날 친구 모임에서 사진작가이자 친구인 P로부터 그가 속해 있는 동호회 회원들과 겨울방학을 이용해 북해도 ‘비에이’로 출사를 다녀온 후 만든 작품사진집을 한 권을 받았다. 사진집을 펼치며 나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하얀 설원 속에 펼쳐진 그림 같은 풍경을 담은 작품 사진이 정말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비에이’의 본래 이름은 ‘피예(Piye)’로 아이누 말이다. ‘기름지고 탁한 강’이란 뜻이다. ‘비에이’는 한자로 ‘미영(美瑛)‘으로 표기한다. ‘아름다운 옥빛’이란 뜻이다. 우리식으로 읽으면 왠지 웃음이 나온다. 아주 흔한 여자의 이름 같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면적은 677.16㎢로 서울특별시와 비슷한 크기다. 70%는 삼림 지역이, 15% 정도는 농경지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풍경 사진작가로 유명한 마에다 신조는 ‘비에이’와 ‘가미후라노’ 언덕 풍경에 감동을 받아 10년간 이곳을 찾았다. 그가 찍은 사진으로 만든 그림엽서와 포스터로 크게 인기를 얻었고, 영화와 텔레비전 광고의 촬영지로 주목받으며 ‘비에이’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제주도에 매료된 사진작가 ‘김영갑’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제주에 ‘김영갑 갤러리’가 있는 것처럼 ‘비에이’ 언덕에는 폐교가 된 소학교를 이용한 ‘다쿠신칸 사진관’이 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드문드문 나무밖에 없는 공간에 사람들은 이름을 붙였다. 하늘에서 보면 자투리 천을 이어 꿰매 붙여 만든 패치워크 같다고 붙인 이름은 ‘패치워크 길'이다. 사진 명소 중 광고로 히트를 쳐 이름이 붙여진 곳이 이곳저곳 있다. <세븐스타 나무>는 담배 브랜드 마일드세븐 광고로 유명해졌다. ‘켄과 메리의 나무’는 닛산 자동차 스카이라인 광고 속에 나온 남녀 주인공 이름을 따왔다. 일본어로 부모·자식을 뜻하는 ‘오야코 나무’는 부모·자식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비에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오늘 일정의 첫 코스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비에이’에 대해서는 남다른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친구P에게 받은 ‘비에이’ 작품 사진 책자를 몇 번이고 펼쳐 보았다. 사진에 관심이 없더라도 프로들이 찍은 ‘비에이’ 사진을 본다면 누구나 탄성을 자아낼 것이다. 혹여 이번 여행에 사진 속의 풍경을 만나고 그런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나를 흥분시켰다. 그러나 여행사 담당 여직원과 통화하면서 궁금한 사항을 물었더니 차창 투어로 대신한다는 말을 듣고 기대를 접었다. 안타깝게도 그림의 떡이 될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마음을 비울 수밖에 없다. 혹시나 해서 가이드에게 질문을 했더니 돌아오는 답변도 역시 같았다. 그나마 위안이었던 것은 세븐스타 나무가 있는 곳에서 잠시 들었다가는 시간에 사진은 찍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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