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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중국&일본

여왕 바위

by 훈 작가 2023. 9. 9.

SNS가 일상화된 지 오래다. 맛집에 가서 예기치 않게 줄을 서고,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 먼저 사진부터 찍는다. 인스타그램같은 SNS에 올리기 위해서다. 요리할 때도, 강아지와 산책을 할 때도 인증사진을 찍어 SNS에 남긴다. SNS를 통해 일상의 모습이나 감정을 올리는 젊은 세대는 자신의  소소한 모습을 여과 없이 공유하는 것을 행복이라 생각하나 보다. 이런 모습은 특히, 여행지의 풍경에서 많이 보게 된다.

대만은 1년 365일 중 300일이 비가 온단다. 비를 만나지 않은 것도 큰 복이라는 가이드 말이 실감 나지 않았다. 예류 지질 공원은 바닷가라 시원한 바람이 불 줄 알았다. 따가운 햇빛이 반갑지 않지만, 비보단 낫다. 마음에 둔 사진 포인트를 만나러 가는 중이라작은 기대감이 마음에 일렁였다. 색다른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기대감에  흥분이 따르는 건 당연하다.

어! 이게 뭐야? 여왕 바위로 가는 길에 긴 줄이 보였다. 설마 했지만, 짐작이 맞았다. 인증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어림잡아 30명은 넘어 보였다. 뒤에 안 보이는 사람들까지 감안하면 더 있을 듯싶었다. 어쩌겠는가, 기다릴 수밖에. 다른 곳에 비슷한 바위들이 많은데 유독 이곳만 유별나다. 여왕 바위만 BTS처럼 인기가 있는 게 이상했다.  왜 그런지 이유도 모른 채 빠른 걸음을 재촉하여 줄 서 있는 사람들 맨 뒤에 서서 기다렸다. 

그런데 줄 앞뒤에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만 있다. 이상하다 싶어 다시 봤다. 맞다. 대부분 젊은 층이다. 차례가 올 때까지 인증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며 표정을 보았다. 다양한 동작에 서로 자리를 바꾸어 가며, 하트 모양, V자 손동작, ‘김치’나 ‘치즈’는 소리는 기본, 차례가 오면 족히, 30초 이상 자리를 떠나지 않고 인증사진을 찍었다. 대충 시간을 보니 1분에 2팀 정도 인증사진을 찍었다. 

왜 이곳이 인기있을까? 네페르티티(Nefertiti, BC1370~BC1330)라는 고대 이집트 여왕 때문이다. 여왕의 옆모습이 닮았다는 것이다. 검색해 보니, 1898년 이집트 왕가의 계곡에 있는 무덤에서 "젊은 여인"이라는 여성의 심하게 손상된 미라가 발견되었다. 페르티티는 기원전 1353년부터 1336년까지 파라오 아케나톤(Akhenaten)과 함께 여왕이었다. 그녀의 상징적인 흉상은 현재 베를린의 노이에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여왕 바위’라는 이름을 따 온 것이다.

이곳 지질 공원은 지각이 융기하는 과정에서 해수의 침식 작용으로 만들어졌다. 가장 높은 곳이 해발 8m란다. 대만 동북부 지각의 평균 융기 속도가 연간 2~4mm인 것을 감안하면 4,000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하지만, 햇빛과 비바람을 맞는 동안 여왕 바위의 목 부분이 점점 가늘어져, 현재의 목둘레는 158cm, 지름은 50cm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다. 

사암이 오랜 세월에 바위를 깎아 마치 벌집처럼 생긴 이런 것을 타포니(Tafoni) 지형이라고 하는데, 현재도 바람에 의해 계속 침식이 진행 중인 상태다. 목 부분이 부러질 가능성이 있지만, 대만 당국은 자연에서 만들어진 것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불교의 섭리를 따라 어떤 조치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다 앞으로 5-10년 뒤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가이드가 이곳에 오기 전에 말했다. 

20~25분을 기다려 사진을 찍었다. 여왕바위를 알현하는데 이 정도 시간이 뭐 문제겠는가. 그보다 SNS의 열풍이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여행에서 사진의 즐거움은 빼놓을 수 없다. 흔히, 여행을 갔다 오면 기억에 남는 건 없고,  ‘남는 것은 사진뿐이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가. 요즘은 그보다 인증 사진을 올리기 위해 여행을 다니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가히, 인증샷 열풍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뭐가 우선인지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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