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주가들이 좋아하는 술안주 중에 갈매기살이 있다. 본뜻은 돼지고기의 한 부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돼지의 횡격막과 간 사이에 붙어 있는 부위로 간을 막고 있다고 해서 ‘칸막이살’‘,"간막이살"이라 하고 또는 ‘가로막이살’ ‘가로막이살’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 식당에 가보면 그렇게 표기한 식당을 찾아볼 수 없다. 대부분의 선술집들이 갈매기살이라 이름 붙여 장사를 한다. 왜 돼지고기 부위를 새(鳥)인 갈매기로(鳥) 붙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직장생활을 하며 동료들과 선술집에서 소주 한 잔을 기울일 때였다. 벽에 붙은 메뉴에 낯선 단어가 삼겹살, 목살과 함께 나란히 붙어 있었다. 갈매기살이다. 처음에는 정말 하늘을 날아다니는 갈매기살 인 줄로 알았다. 나중에 고기를 아는 동료의 설명을 듣고서야 이해했다. ‘간막이살’ 또는 ‘가로막살’이 ‘갈매기살’로 발음이 전이되어 생긴 것임을 그때 처음 알았다. 이와 같이 일상에서 쓰고 있는 생활용어 중에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가 달라지기도 하고 새로운 말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변하는 것이 어디 언어뿐 이겠는가. 도야호수 하늘을 나는 갈매기를 보니 언어뿐 만 아니라 새들도 시간이 지나고 환경이 변하면서 서식지가 달라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도야 호수 유람선 주위를 빙빙 맴돌며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을 보니 세월이 녀석들의 삶을 바꾸어 놓은 것인지 아니면 바다를 잃고 이곳 호수에 정착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바다 새인 갈매기는 당연히 바다에서나 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그것은 고정관념이 불러온 오류였나 보다.
움직이는 피사체를 사진에 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그것도 고정관념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유람선 갑판 위에서 날아다니는 갈매기를 쉴 새 없이 눈여겨 살펴보았다. 사람의 눈으로 갈매기를 좇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카메라에 담는 것은 마음 같지 않다. 날아다니는 갈매기를 쫓아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 갑판 한쪽에 자리를 잡고 화각을 고정시킨 상태로 새들이 지나가는 길목을 지켰다. 녀석들이 화면에 들어왔다 싶으면 감각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피사체를 잡는 일이 만만치 않다. 어떤 일이든 시행착오는 있는 법이다. 조리개 모드에서 셔터 모드로 전환하고 가장 빠른 셔터속도인 1/4000초로 맞추고 화각 안에 갈매기가 보인다 싶으면 셔터를 눌렀다. 하지만 늦다. 감각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방법이 없다. 예측상황을 가정하고 셔터를 눌렀다. 수없이 반복해서 셔터를 누르고 또 눌렀다. 적어도 이 순간만은 갈매기를 앵글에 담는 것이 꿈이 되어 버렸다.
호수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를 카메라로 찍는 것은 실력이 아니라 운이다. 도저히 실력으로 마음에 드는 그림을 담을 수 없다. 귓전에 울리는 셔터소리가 바람에 흩어져 날아간다. 갈매기가 날아가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가늠할 수 없다. 어느 정도 먼 거리라면 피사체를 잡을 수 있는데 문제는 피사체가 날개를 펼친 모습으로 가까이 있는 장면을 포착하는 것이 어렵다. 수도 없이 시도를 하고 또 시도를 했다.
도야 호수의 유람선 투어는 완전 갈매기 쫓는 시간이 되었다. 카메라에 잡힌 갈매기들을 불러왔다. LCD창에 녀석들이 불규칙하게 스쳐 지나간다. 때로는 멀리 때로는 가까이 호수 위를 날고 있다. 구도나 초점이 맞지 않은 녀석들이 호수 면을 배경으로 날고 있다. 이따금 운이 좋게 그럴듯하게 잡힌 그림도 있다. 지나가는 한 컷, 한 컷 속에 포착된 갈매기들 중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갈매기를 쫓던 도야호수 유람선 투어가 50분 만에 막을 내렸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갈매기의 꿈>이란 책이 생각난다. 1970년 미국에서 발표된 우화형식의 신비주의 소설이다. 전직 비행사였던 리처드 바크가 비행에 대한 꿈과 신념을 실현하고자 끝없이 노력하는 갈매기(조나단 리빙스턴)의 일생을 통해 인간 삶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그린 감동적인 내용이 담겨있다. 소설에서 작가는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삶의 진리를 일깨우며, 인간들에게 눈앞에 보이는 일에만 매달리지 말고 멀리 앞날을 내다보며 저마다 마음속에 자신만의 꿈과 이상을 간직하며 살아갈 것을 시사(示唆)하고 있다.
주인공이 조나단 리빙스턴은 먹이를 얻기 위해 하늘을 나는 갈매기와는 달리 비행 자체를 사랑하는 갈매기다. 멋진 비상(飛翔)을 꿈꾸는 주인공의 행동은 동료 갈매기사이에서 내려오는 오랜 관습에 저항하는 것으로 보여 동료 갈매기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게 되고 끝내 결국은 무리로부터 쫓겨나게 된다. 그래도 주인공은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는 자기 수련을 통해 완전한 비행술을 터득한 조나단은 마침내 무한한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초현실적인 공간으로까지 날아오르는 자신만의 꿈을 실현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보통사람들은 일상에서 먹고사는데 바쁜 나날을 보내며 산다.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 이어질 일상의 틀은 오래전부터 익숙해져 있는 습관처럼 우리는 살고 있다. <갈매기의 꿈>은 그런 인간사회의 삶의 틀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있다. 아마도 그것은 그저 먹고 사는 것에서 벋어나 좀 더 업그레이드된 차원의 삶에 대한 가치를 추구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삶이 추구하는 가치는 먹고 사는 보편적인 가치 위에 또 다른 가치가 있다. 그것은 행복이다. 모든 갈매기들도 하루하루 먹고 산다. <갈매기의 꿈>은 먹고 사는 일상적인 삶의 틀을 벗어나 자신만의 꿈을 찾으라는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던져 준다.
꿈속에는 행복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꿈을 꾸며 산다. 행복을 꿈꾸는 것은 삶의 본질이다. 여행을 꿈꾸는 사람은 여행 자체가 행복이고 그 자체가 꿈의 실현이다. 북해도 남쪽에 위치한 도야 호수 유람선 투어에서 만난 갈매기를 보고 가슴에 담긴 행복을 만지작거렸다. 그저 단순한 호수 위를 누비는 유람선 주변을 날아다니는 갈매기를 사진에 담으려는 작은 욕망이 결국은 또 다른 행복이었음을 일깨워 준다. 아마도 사진에 대한 백수의 열정이 불러온 작지만 소소한 나만의 행복이다. 어쨌거나 여행자체도 행복이지만 그 여행 속에서 즐기는 사진의 미학은 여행 인증사진을 넘어 여행의 가치를 한층 더 높여 주는 행복이라는 사실을 도야 호수 유람선 투어에서 만난 갈매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
생뚱맞게도 도야 호수에서 만난 갈매기를 보고 술안주로 시작해 백수의 <행복론>까지 이어졌다. 오늘 유람선 투어에서 찍은 주인공 갈매기 사진은 술안주가 아니다. 애꿎은 애주가들이 갈매기란 이름을 오남용해 만든 이름이다. 선술집 술안주 메뉴의 갈매기살은 새고기가 아닌 돼지고기다. 돼지고기가 갈매기로 둔갑한 것은 오로지 언어학 차원에서 발음상 부르기 쉽게 붙여 부른 낱말일 뿐이다.. 갈매기와는 전혀 관계없는 용어다. 선착장에서 유람선이 출발하자마자 꽁무니를 따라 날아다니는 갈매기를 보고 나도 모르게 아재 유머를 한다고 ‘어라 술안주가 날아다니네.’ 소리칠 뻔했다.. 참으로 엉뚱한 생각이다. 도야 호수 갈매기를 보고 처음에는 선술집 술안주가 떠올랐으나 다행스럽게도 삶의 가치 실현인 꿈의 상징으로 정리를 하게 되었다. 여행이 만든 상상의 자유다. 여행은 전혀 예기치 않은 상상과 행복을 불러올 때가 있다.
(일본 : 북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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