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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아포리즘

터널의 끝에서 만나는 빛

by 훈 작가 2023. 5. 11.

뉴질랜드 호머 터널 (Homer Tunnel))은 달랐습니다. 우선 조명시설이 없어 너무 어둡고, 내부는 자연 화강암 상태였고, 출구가 입구보다 55m나 낮아 터널이 내려가는 방향으로 5.7도 경사져 있습니다. 게다가 편도 1차선이다 보니 한쪽에서 진입하면 반대쪽에서는 기다려야 했죠. 이 터널은 1935년 시작해 1954년에 준공되었으며, 길이 1,219m로 해발 925m 높이에 있고, 오로지 다이너마이트와 망치, 정으로 만들었다고 가이드가 설명했습니다. 

막상 차가 터널로 들어가니 원시 동굴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어두운 터널은 처음이라 실제 무섭기도 했습니다.  너무 어두워서 한밤중처럼 느껴졌고,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숨죽이며 답답함을 참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터널을 빠져나오자 마자 세상이 확 바뀌었습니다.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오며 만난 바깥 풍경이 조금 전과 전혀 다른 세상처럼 보였거든요. 그렇게 터널 안과 밖의 세상이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우리는 지금 기나긴 코로나 터널의 끝을 지나고 있습니다. 이제 끝이 보인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겁니다. 우리는 이 터널을 지나는 데 무려, 3년 4개월이나 걸렸습니다. 그동안 많은 고통과 희생이 따랐고,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살아야만 했지요. 심지어 ‘코로나 블루’라는 용어가 등장했고, 오랜 기간 코로나에  감염될까봐 불안과 외로움이 만든 감옥에 갇혀 지내야만 했습니다. 

처음에는 잠시 스치는 찬 바람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우리 모두 거센 폭풍 속에 빨려 들어간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에서 가장 긴 터널을 통과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겁니다. 이전에 우리가 만난 터널은 언제나 찰나에 지나지 않는데, COVID19 터널은 길어도 너무 길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늘 그렇듯 어두운 터널의 끝에서 빛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빛의 소중함이 새삼스럽기만 한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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