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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장편소설

별을 죽인 달(44)

by 훈 작가 2023. 10. 10.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눈물의 의미

  아침 일찍 눈을 떴다. 김재형 변호사가 한 말이 생각났다. 정말 내가 그렇게 달라진 걸까? 정말 그렇게 보였을까?
“그 간의 열정, 그 용기 다 어디로 간 거예요? 자 힘내시고요. 우리 헤어지기 전에 이별을 아름답게 마무리했으면 좋겠어요.”
  무슨 이유인지 머릿속에 그 말이 자꾸 메아리쳤다. Anna는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착각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변호사를 통해 자신이 변한 것 같은 모습을 알게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노-크 소리와 함께 엄마가 들어왔다. Anna가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있다가 일어났다.
“오늘 기자회견 한다며?”
“사실 난 하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김 변호사님 말씀을 듣고 보니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 
“네가 고집을 꺾은 것을 보면 김 변호사님 말이 수긍이 같던 모양이구나.”
“맞아, 엄마!”
“변호사님이 뭐라 하시던?”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에 그간 나를 응원해 주고 사랑을 베풀어 주셨던 분들께 마지막으로 감사 인사를 하고 떠나는 게 Anna 다운 모습이래. 그냥 달랑 성금만 기부하고 떠나는 건 예의가 아니라 하시잖아.”
“그건 김 변호사님 말이 맞는 거 같은데.”
“엄마도 그렇게 생각해?”
“엄마 같으면 김 변호사 말대로 따를 거야.”
“그럼, 다행이네. 기자회견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마음을 바꿨어.”
“그래, 잘했어.”
“기자회견은 몇 시니?
“오전 11시.”
“장소는?”
“여성의 전화 사무실.”
“그건 그렇고 엄마! 지금 입고 있는 이 옷. 어때?”     
“잘 어울리기는 하는데. 기자회견에 입고 나가기엔 너무 화려한 느낌이 들어. 다른 거 입는 게 낫지 않을까?”
“화려해 보여?”
“엄마 눈엔 그래 보여.”
“그럼 다른 걸로 입어야겠네.”
“네가 변하긴 했어.”
“뭐가?”
“예전 같으면 엄마보고 패션 감각이 구식이라 몰라서 그런다고 우겼을 텐데…” 
“호호호, 내가 엄마한테 그랬어?”
“하하하… 그래.”

  회견장에 김 변호사를 비롯해 여성계 인사, 여성 인권 운동단체 임원진,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 여성의 전화 등 관계자들이 많이 보였다. Anna도 얼굴이 낯설지 않은 분들이었다. 그들이 Anna를 알아보고 다가와 그간 마음고생 많았다며 격려 인사를 건네자, Anna도 밝은 얼굴로 인사를 했다. 
  법원 출입 차수정 기자가 회견 진행을 맡은 김재형 변호사를 찾아와 악수하였다. 차 기자는 Anna 기자회견 취재 지시를 받고 왔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가 차 기자에게 기사를 잘 써 달라고 웃으며 덕담을 건넸다. 
  시간이 임박하자 관계자들이 착석했다. 회견은 김 변호사가 Anna양 사건에 대한 경위를 간략하게 설명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어 그녀가 회견 당사자인 Anna를 소개했다. Anna가 미리 준비한 원고를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일어나 인사를 하고 앉았다. Anna가 마이크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Anna Edward입니다. 오늘만큼은 저의 한국 이름인 ‘설은별’로 여러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이제 대한민국을 떠납니다. 떠날 때는 조용히 떠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예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국민 여러분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랑만 받고 떠나려 했던 제 생각이 너무 짧았습니다. 제가 받은 상처와 고통만 생각한 나머지 많은 분께 받은 사랑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제가 서게 된 이유입니다.     
  무엇보다도 오늘 이 자리가 있기까지 용기와 신념을 잃지 않게 저를 이끌어 주신 김재형 변호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한없이 무섭고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저의 손을 잡아 주셨던 변호사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이 자리에 설 수도 없었고 골리앗 같은 권력에 맞서 싸울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성폭력상담소와 여성의 전화 등 많은 여성단체와 시민단체 관계자 여러분에게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이보다 더 감사한 것은 광장에 나와 촛불로 공정과 정의를 외쳐 주신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Anna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저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과분한 사랑을 많은 분들로부터 받았습니다.”
Anna가 감정이 북받친 듯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말을 잇지 못했다. 옆에 앉아 있던 김재형 변호사가 재빨리 손수건을 건넸다. Anna가 다시 냉정을 되찾고 말을 이어갔다. 
“제가 평생 살아가면서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에게 받은 사랑은 잊지 못할 것입니다. 마음 깊이 감사하고 또 고맙다는 말씀을 저의 진심을 담아 다시 한번 인사드립니다. 저는 저와 비슷한 처지에서 고통을 받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성 여러분에게도 포기하지 말고 용기를 잃지 않기를 응원하겠습니다. 음지에만 머무르고 있으면 햇빛은 결코 당신을 찾아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남성 여러분들에게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의 피해자는 여성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피해 당사자가 바로 내 딸이라면, 바로 내 여동생이라면 하고 생각하시면 이 같은 용어들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영원히 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고 고통을 겪었습니다. 만약 전임 대통령께서 제가 당신의 친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추악한 손길을 뻗었을까요? 저는 분명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말하기 부끄럽고 창피하지만, 저에게 몹쓸 짓을 한 그분이 제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알고 삶을 포기하려고도 생각했습니다. 저의 정체성에 대해 너무 혼란스러워 살아야 하는지 죽어야 하는지 고통스러운 시간이 제 영혼을 온통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생명은 제가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신에게 부여받은 생명을 제가 스스로 버리는 것은 가장 큰 죄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어떤 경우에도 삶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와 비슷한 고통을 겪는 분들이 있다면 포기하지 말고 용기를 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성 피해로 고통을 받는 여성분들을 위해 저의 작은 마음을 담아 성금을 기부하고 떠나려 합니다. 저의 이런 뜻을 말씀드렸더니 어머님께서도 성금을 보태 주셨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20만 달러를 그동안 저를 위해 변호를 맡아 주셨던 김재형 변호사님을 통해 성금을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Anna가 일어나서 성금이 든 봉투를 꺼내 김재형 변호사에게 전달했다. 기자회견장에 박수 소리가 크게 퍼졌다. Anna가 마지막 말을 이어갔다.
“그동안 서울 생활을 하면서 지금, 이 순간이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그간 저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에 대해 깊이 감사드리고 고맙다는 인사 말씀을 올립니다. 그리고 평생 잊지 않고 여러분의 사랑을 간직하며 살겠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여러분 가정에 항상 주님의 은총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Anna가 일어나 인사를 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회견장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김재형 변호사가 그녀를 안아 주었다. 뜨거운 박수소리가 퍼져나갔다. 함께 있던 많은 여성계 관계자가 Anna에게 다가가 안아 주고 격려해 주었다. 이런 모습을 카메라 기자들이 찍느라 셔터 소리와 함께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김재형 변호사는 Anna와 송별식을 겸한 점심을 사무실 직원들과 함께하며 마지막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직원들과 함께 커피타임을 가졌다. 박 사무장과 직원들이 그간 정이 많이 들었는데 막상 헤어진다고 하니까 눈물이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가 Anna를 마지막 포옹을 하며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Anna가 변호사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왜 이리 마음이 슬픈 것일까? 알 수 없었다. 교대역 사거리까지 걸어가는 동안 뜨거운 심장이 식지를 않았다. Anna가 가던 걸음을 멈추고 휴대폰을 꺼냈다.
“변호사님! 서울을 떠난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변호사님 덕분에 잃었던 웃음을 찾게 되어 너무 행복합니다. 미국에 돌아가서도 종종 안부 전하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Anna 올림.”
  교대역에서 2호선 전철을 탔다. 붐비는 전철 안에서도 여전히 허전한 마음이 여전했다. 사당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탔다. 동작역을 지나자, 한강이 보였다. “이제 한강도 볼 수 없겠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강 공원에서 여유를 만끽하며 운동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이 행복해 보였다. 그녀가 한강 변을 바라보고 있을 때 스마트 폰에 문자음이 울렸다.
“Anna 씨! 저도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어요. Anna 씨는 누구보다도 멋진 여자예요. 그간 서울에서 있었던 악몽은 다 잊으세요. 물론 하루아침에 잊을 수는 없을 거예요. 그러나 Anna 씨말대로 웃음 다시 찾았잖아요. 저는 Anna 씨가 다시 찾은 웃음을 앞으로 절대 잃지 않을 거라 믿어요. Anna 씨 인생에 항상 신의 영광이 함께 하기를 기도할게요. 김재형.” 

  삶에는 많은 만남과 이별이 있다. 이별의 시작은 만남이다. 언젠가 이별을 마주할지라도 우리는 만날 때부터 이별을 생각하며 만나지 않는다. 적어도 만남이 지속되는 시간 동안 사람들은 이별이란 단어를 잊고 산다. 예고된 이별이 아닌 이상 우리는 이별을 준비하며 살지는 않는다.
  Anna와 김 변호사의 만남도 예외는 아니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시작부터 이별을 품고 있었다. 단지, 시점이 언제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이별 시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판도라 상자가 열리는 순간부터였다. 이후 전임 대통령의 실종 사건은 이별의 시간을 앞당기게 했다.
  두 사람은 이별 역에 도착했다. 한 사람은 떠나야 하고 한 사람은 남아야 한다. 이별과 마주했다. 웃으면서 헤어져야 하는데 눈물이 Anna 심장을 젖게 했다. 이별은 아팠다. 그녀는 생애 처음 이별의 아픔을 가슴으로 안았다. 이전에 스쳤던 이별과는 너무 달랐다. Anna는 이별이 남긴 눈물의 실체가 뭔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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