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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장편소설

별을 죽인 달(46)

by 훈 작가 2023. 10. 12.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참회(懺悔)의 길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 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사리자 색불 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서

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태백산맥 깊은 산속에 가을이 찾아왔다. 나그네처럼 단풍이 또 왔다. 매년 찾아오는 손님인데 올해는 유난히 색이 곱다. 사람이라고는 찾지 않는 깊은 계곡 산허리에 있는 자그마한 암자(庵子)가 보였다. 수행자만 홀로 기거하다 보니 속세에서 이곳을 찾는 사람은 없다.
  아침에는 햇살이, 한낮에는 숲 속 산새들이 손님이다. 불상 앞에서 반야심경 독경을 끝낸 해월스님이 툇마루에 앉아 가을 끝자락에 매달린 구름 한 점을 보고 있다. 속세와 떨어진 이곳은 시간이 만든 흔적 따로 없다. 계절이 그린 풍경뿐이다. 스치는 바람만이 향기를 실어와 자연의 변화를 알리는 시곗바늘 역할을 한다.
  산 아래 계곡 초입에 있는 천년고찰 원효사 법당에서 주지 스님의 염불 소리가 청아하게 들릴 때도 있고 안 들릴 때도 있다. 바람 자는 날은 그 소리가 은은하게 마음을 달래주는 데 오늘은 잠잠하다. 아마도 우암스님께서 어디론가 수행을 떠나신 모양이다. 스님은 이따금 해월을 올라와 한담(閑談)을 나누곤 했다.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딱새들이 갑자기 푸드덕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멧돼지 가족이 바람 쐬러 나온 모양이다. 녀석들이 움직이면 새들이 가끔 경기(驚起)하며 놀라고는 했다. 오늘도 그러려니 했는데 주지 스님이신 우암이 저만치서 모습을 드러냈다. 해월이 일어나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다.
“스님! 어서 오세요.”
“아이고 이제는 갈수록 무릎이 성치 않습니다. 육신을 많이 써먹을 만큼 써먹은 탓인지 자꾸 여기저기 몸을 살살 다루어 달라고 아우성칩니다.”
“자, 앉으시지요.”
우암이 자리에 걸터앉았다. 그가 해월을 보면서 말문을 열었다.
“이제 속세를 떠나신 지 꽤 되셨지요?” 
“5년째입니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요?”
“저도 세월 가는 게 느껴지지 않지만, 바람 타고 오는 손님들이 항상 때가 되면 왔다가 가고 또 오는 횟수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긴 속세를 벗어나면 세월 가는 게 실감이 나지 않지요. 그게 산사에 사는 무상무념의 삶이자 행복입니다.”
“해월 스님, 108 참회문은 몇 년이나 하셨나요? 
“그것도 5년 정도 했습니다.”
“참회는 중생들이 자기가 지은 죄를 여러 사람 앞에 숨김없이 밝히고 용서를 구하는 것을 참(懺)이라 합니다. 그 죄를 뉘우치고 다시는 짓지 않겠다는 회(悔)가 합쳐서 참회라 하지요. 참회에서 말하는 죄란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으로 자기뿐 아니라 이웃에 해를 입힌 모든 걸 말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진정한 참회는 수행의 한 방편이자 깨달음을 얻는 첫걸음이죠. 기도할 때 제일 먼저 참회문을 봉독 하는 것입니다. 해월이 그걸 5년째 하셨으니 이제 진정 속세를 벗어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해월이 말했다.
“속세의 탈을 쓰고 있을 때는 항상 번뇌 속에서 허덕인 것 같았는데 이제는 마음속에 날아다니던 번뇌의 그림자가 어디론가 사라진 것 같습니다.”
“그럼, 제가 법명을 해월(解月)이라고 지은 까닭을 깨달으신 셈이네요.”
“그렇습니까? 스님! 그럼, 제 법명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뜻풀이를 저에게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해월(解月)이라는 법명을 지어 드린 이유가 있습니다. 해(解)는 해탈(解脫)할 때‘해’ 자로 ‘풀다.’‘용서하다.’,‘벗기다.’는 뜻입니다. 월(月)은 세월을 뜻하지요. 제가 처음 뵈었을 때 해월은 속세에서 지은 업(業)이 다른 수행자들과 많이 달라 보였습니다. 아! 이분은 참회의 시간이 참 많이 필요한 분이구나 하고 느꼈지요. 오랜 세월 속세에서 쌓은 것들을 풀고 용서받으려면 내 마음에 쓰고 있는 탐욕의 ‘탈’ 즉‘가면’을 벗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게 마음같이 잘 안되지요. 조금 전 제가 속세를 떠난 지 얼마나 되느냐고 여쭈어봤지요. 해월께서 5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속세의 탈을 벗은 것 같다고 말씀하셨지요. 해(解) 즉 스스로 풀고 벗어나는 것을 이루시었습니다. 이루는 데는 세월이 걸리지요. 즉 그게 달(月)이지요. 달이 세월을 만들거든요. 이제 진정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되신 겁니다. 그것을 깨달으시라는 뜻에서 해월(解月)이라고 법명을 지어 드린 겁니다. 해월(解月)은 속세에서 쓰고 있던 가면을 벗은 지금 모습이 진짜 얼굴입니다. 5년 동안 쓰고 있던 가면을 벗게 해 준 것이 세월이고, 참회 속에 과거의 해월을 묻고 다시 태어난 것이지요. 저는 언젠가 해월(解月)이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찾으리라 믿고 있었습니다. 또 그렇게 되기를 저도 저 아래에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는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 해월(解月)이 진정 자기 얼굴을 찾은 것에 대해서 그리고 속세의 가면을 훌훌 벗어 버린 것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런 뜻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우암 스님!”
“깨달음은 남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입니다.”
우암 스님이 합장하며 고개를 숙이자, 해월도 같이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다.
“해월 스님!” 
“예, 스님!”
“해월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이제 가면을 벗었으니 진정한 수행의 길을 걸으실 수 있습니다. 수행은 나를 깨우치는 것이고, 깨우친 순간부터는 참회(懺悔)의 시간을 통해 나 자신이 거듭나는 것이지요. 그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을 부처로 만들고 스스로 부처가 되는 길을 걷는 것입니다.”
우암 스님이 처마 끝에 흔들리는 풍경(風磬)을 가리키며 말했다. 
“해월 스님! 풍경 끝에 매달려 있는 게 무슨 모양인지 아시죠?”
“물고기 모양 아닌가요.”
“예, 맞습니다. 풍경은 바람이 이끄는 대로 소리를 내지요. 이는 수행자의 나태함을 깨우치는 역할을 합니다. 물고기가 잠들 때도 눈을 감지 않는 것처럼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경세(警世)의 의미를 담고 있죠.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풍경(風磬) 소리를 기억하시면서 수행하시기를 바랍니다.”
“잘 알겠습니다.”“이만 내려가 보겠습니다.”

  해월(解月)은 한때 북악산 기슭에서 속세의 권세를 누렸다. 그때는 광화문 광장이 내려다보였고 뒤로 한강이 있었다. 지금 보이는 것은 맑은 하늘과 주변의 숲을 이루는 나무들이다. 저녁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있다.
  해월이 기거하고 있는 작은 암자를 1,000미터 높이의 장엄한 산 능선이 둘러싸고 있다. 우암 스님이 내려간 뒤 해월(解月)은 가을이 붉게 물든 저녁 하늘을 바라보았다. 해월은 인생무상(人生無常)을 깨달으며 불가에 귀의한 지 5년이 되었다. 생각해 보니 지난날 속세에서 누렸던 권력은 덧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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